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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r 07. 2021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

 _황정은 「파묘」

어머니는 매년 묘를 찾아왔지만 이제 수술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오지 못한다. 어차피 이제 올 사람도 없으니 묘를 없애고 화장을 하려고 한다. 딸은 이를 돕는다. 같이 묘를 찾아서 절하고 사람을 구해서 파묘를 진행한다. 남동생은 뉴질랜드에 있다. 영주권을 신청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한다.



소설은 딸의 시선에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남동생(아들)을 바라본다. 어머니가 하는 말에도 남동생이 하는 말에도 동의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뭐라 하지는 않는다. 연면의 시선이 이들에게 향한다.


최근 서너해 동안 이순일은 묘를 향해 그렇게 말하곤 했는데 올해가 정말 마지막이었다. 이순일은 일흔둘이었고 내년엔 양쪽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을 예정이었다. 산에서 나고 자라 능숙하게 산비탈에 달라붙어 두릅이며 고사리를 캐곤 하던 이순일은 이제 평지에서도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 못했고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며 천천히 걸었다.
 _황정은 「파묘」


뉴질랜드로 떠난 남동생은 세상 쿨하다. 광화문에서 집회하는 어르신에 대해서도 그럴 자유가 있다고 툭 던지고 슬쩍 넘어간다. 촛불집회에 나가는 것도 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딸의 일이다. 자질구레하고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는 딸에게 남동생은 말한다. 효도하지 말라고.


그런 거 아냐.
너무 효도하려고 무리할 필요는 없어.
효?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답했다.
그것은 아니라고 한세진은 생각했다. 할아버지한테 이제 인사하라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라고 권하는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아팠을 거라고, 언제나 다만 그거였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_황정은 「파묘」


이 소설은 시선이다. 가족을 어떻게 보나, 세상을 어떻게 보나, 위아래 시선을 돌려가며 연민을 보내고 있나, 묻는다.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에게 무안을 주면서 비싸게 굴지는 않나, 정치에 무관심하고 자기 이익만 따진다고 남동생에게 손가락질하지는 않나. 천천히 생각해보면, 다른 세대에게 연민의 시선을 던지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불완전하다. 우리를 키워준, 이제는 무능력해진 어머니 세대를 마냥 우러러 보지 않는다. 그러기엔 세상이 너무 빠르다. 우리보다 더 버릇 없이 자라고 있는, 앞으로 우리를 먹여살릴 아랫세대도 아니꼽게 본다.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불완전하고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이순일이 매년 낫으로 길을 내며 거기로 올라가는 이유를 한세진은 이해했다. 엄마에게는 거기가 친정일 것이다. 그 묘가.
 _황정은 「파묘」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고 소설은 말한다. 연민의 시선을 계속 가지고 가면 좋겠다. 이런 어머니도 이런 남동생도 계속 보듬어안고서.


★★★★★ 섬세한 소설. 섬세하지 않은 독자지만, 섬세한 소설을 왜 읽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소설 「파묘」는 황정은 작가의 연작소설 「연년세세」의 첫번째 작품이다. 이어 나오는 소설에도 동일한 등장인물이 동일하게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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