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놓은 만화책을 하나둘 꺼내 읽고 있다. 가장 큰 목적은 책 줄이기다. 일단 읽고 별로면 버려야지, 하는 안일한 마음으로 달리고 있다. 만화책이 부피도 크고 내용이 허접한 것도 많겠지, 즉 버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요즘엔 만화책을 들춰보고 있다.
만화책 말고 글자책은 걸작도 많지만 (내 책 포함) 폐지나 다름 없는 책도 많다. (나 포함) 누구나 쉽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만화책은 그렇지 않다. 버릴만한 책을 고르기 쉬울 거라는 예상과 달리 좋은 작품이 많다. 아무래도 진입장벽이 높고 더 오랜시간 걸려서 만들기 때문인 듯하다. 저자도 전문작가가 대부분이다. 의사든 영어강사든 부동산투기꾼이든, 누구나 입만 움직일 수 있으면 글자책을 만들 수 있는데, 만화책은 다른 직업인이 은근슬쩍 끼어들 수 없다. 일단 만화책을 만들 정도가 되면 어떻게든 그림이나 디자인으로 먹고 산다. 그게 최소한의 질적 마지노선을 보장해준다.
오늘 읽은 엄마들도 좋은 작품이다. 제목부터 좋다. 어떤 제목이 좋은 제목일까. 독자들에게 기대를 가지게 하고 책을 사게 하고 그 기대를 와장창 부수고 혼쭐을 내는 제목이 좋다. 엄마들도 좋은 제목이다. 엄마들? 따뜻하고 훈훈하고 보살피는 엄마들? 그런 엄마 이야기인줄 알고 책을 펴면 얼마안가 그 기대는 와장창 박살난다. 두 엄마가 쌍욕을 하며 머리끄덩이를 잡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혼란스럽다. 육탄전에 버금가는 연애 이야기다. 지금까지 어느 소설(내가 소설은 잘 안 본다) 어느 드라마(내가 드라마는 잘 안 본다) 어느 영화(내가 영화는 잘 안 본다. 혹시 어느 영화에서 다루고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길 바란다.)에도 나오지 않는, 파란만장한 동물의 왕국이다. 만나다 헤어지고 등쳐먹고 싸우고 다시 만나면서 보고싶어하고 설레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달리는 주변인들의 연애사다.
인격이 있고 욕망이 있고 당연히 성욕도 있는 중년여성들의 감춰진 속 이야기,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아 감춰진, 치마 속 이야기다.
그림체도 토속적이다. 한국적이다. 주제를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그림이다. 분명 우리의 「엄마들」은 미디어에서 그려진 것처럼 희생만 하며 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리 없다.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고 울고 불고 자연스럽게 인간으로 그리고 엄마로 살았을 것이다.
한병철은 짜증과 분노를 구분한다. 그냥 화만 내면 짜증이다. 반면 상황을 멈추게 하고, 상황을 변화시키는 건 분노다. 새로운 시작을 만드는 것도 분노다. 「엄마들」의 짜증은 점차 분노로 전환된다. 그렇게 질풍노도의 주변인들은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