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달 미용실에 간다. 군대를 다녀온 후부터다. 군대에서 가장 못하던 게 적응인데, 이상하게도 군대식 짧은 머리에 적응이 되어버렸다. 이유는 모르겠다. 조금 머리가 길어지면 지저분하다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아무 미용실에나 갔다. 짧은 머리면 다 비슷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아마 다른 사람은 구별도 못 하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어디는 옆머리를 너무 많이 치고, 어디는 윗머리를 너무 길게 자르며, 어디는 앞머리를 남기지 않는다.
옆머리는 어떻게 해주시구요, 윗머리는 저렇게 해주시구요, 앞머리는 이렇게 해주세요. 매번 말하기도 이제 귀찮다. 어차피 미용사 스타일대로 자를 거.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한 곳만 갔다.
신데렐라
가게 이름은 신데렐라였다. 집 앞에 미용실만 다섯 군데가 있는데, 그중 하나다. 인터넷에서 후기를 찾아봤는데, 미용사가 불친절하고 적혀있었다. 방문해보니 과연 그러했다.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머리는 잘 자르고, 불친절한 미용실
나는 과한 친절이 부담스럽다. 친절이 노동인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끼는 건지 모르겠다. 친절은 감정노동이다. 누리고 싶다면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 만약 친절한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른다면, 우리는 머리 자르는 비용과 함께 감정노동 서비스에 대한 비용까지 지출해야 한다. 하지만 친절이라는 일상용어로 불리면서, 감정노동은 비가시화된다. 심지어 여성의 경우는 전통적인 성역할의 연장성으로 이해된다. 친절하지 않으면 여성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비판받고, 친절하면 여성이니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다.
여성들이 주로 수행해온 특정 노동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는, 이들의 노동을 전통적인 성역할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게 함으로써, 해당 노동에 대한 정당한 직무 평가를 방해해왔다. 즉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수행하는 노동의 내용을 왜곡해서 이해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여성의 일을 상대적으로 쉽고, 안전하고, 저임금의 무가치한 일로 평가절하하게 만들어 온 것이다. 대표적 여성 집중 직종의 하나인 콜센터 노동이 오랫동안 표준화된 단순 반복적 업무로 간주되며 사회적으로 저평가되었던 것 또한 이러한 맥락 안에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콜센터 상담원에게 요구되는 자질인 의사소통 능력과 공감 능력, 친절함 등이 전통적 여성의 특성과 일치한다는 통념은 해당 노동을 여성에게 적합한 일, 혹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저숙련, 저임금의 노동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_김현아 「감정노동, 그 이름의 함정」
나는 미용 서비스, 정확히는 이발 서비스만 받고 싶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이발소에 가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동안은 허름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들어가지 못했는데,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감정노동 서비스는 제외하고, 이발 서비스만 받을 수 있어서, 그야말로 신데렐라 취급을 받을 수 있어서, 매달 부담 없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이발만 잘 하는 미용실
그리고 나는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이사 며칠 전 부랴부랴 신데렐라에 방문해서 머리를 잘랐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유리구두 한 쪽을 보면서, 과연 이사 가서도 신데렐라를 찾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곳에 정착하기 전까지는 마음에 드는 미용실을 찾아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유목생활을 해야 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매달 나를 따라다니던 고민거리가 사라진 것만으로도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믿고 가는 단골 가게가 생기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것도 장싸롱 덕분에 알았다. _정지혜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미용실을 찾아 유랑했다는 정지혜가 이해된다. 신데렐라를 찾아 해매는 왕자처럼, 아마 한동안은 매달 미용실을 탐방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