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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21. 2021

강한 권력은 보이지 않는다

_한병철 「권력이란 무엇인가」

지식이 쾌락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새로운 사실을 알았을 때가 아니라, 내가 사실로 믿고 있었던 개념이 부정당할 때다. 그게 아니었구나! 한병철이 잘 하는 게 이거다. 얇고 이쁜 책을 끊임없이 내면서, 사람들의 편견을 부순다. 이번에 부술 대상은 권력이다.


권력은 부정적인 단어로 느껴진다. 어느 정치인도 권력을 추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애국한다고 하거나 사회를 바꾼다고 말한다. 불합리한 행동을 지시할 수 있고 그게 용인되도록 하는 힘, 그게 권력이다. 독재와 민주화 시기를 거쳐온 만큼, 우리는 특히 권력이라는 단어를 경계한다.


그런데 정말 그게 권력일까? 선거일이 되어서 공직에 도전하는 정치인들이 얻으려고 하는 건 권력이 아닌 다른 무언가인가. 그렇다면 그건 뭐라 불러야 할까? 저자는 권력을 새롭게 정의하고, 특성을 분석한다.


민주주의와 평등, 소통이 유일한 진리로 여겨질 때, 나는 항상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리더가 좋은가? 어떤 권력이 좋은가? 가족 구성원은 친구처럼 지내는 게 옳은 건가? 연인은 평등해야 하는가? 막연한 의구심을 밖으로 꺼내는 건 쉽지 않다. 독재자가 근현대사에 그어놓은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피해자와 유가족이 살아 숨쉬고 있는데 어찌 감히!


막연한 의문이 언어화되고 구체화된 건 우치다 타츠루 덕분이다. 평등한 공동체가 좋다는 편견에 대해 그는 말한다. 누군가, 이제부터 우리는 평등한거야! 라고 말해야, 비로소 평등해지는 게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스스로 의식하고 권력을 발휘하지 않아야 표면적인 평등이 유지될 수 있다. 평등 또한 권력자의 결정이다. 나도 나중에 우리는 평등해! 라고 선언하는 권력자가 되고 싶었다.


한병철의 주장을 간단히 하면 이렇다. 권력에 대한 너희들의 부정적 편견을 박살내주마! 권력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권력은 질서를 만들고 생산한다! 권력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강력한 통치자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게 자유다. 저자는 이걸 합친다. 이게 합쳐져? 합쳐진다. 권력은 강함의 정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저자가 이런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 내가 이해한 방식대로 적었다.)


저자가 이렇게 쉽게 표현하면 참 좋겠으나, 이건 철학자의 책이다. 독자도 철학자일 거라고 가정한다. 기존 철학자의 의견을 하나하나 언급하고 손수 박살내는 공정을 거친다는 뜻이다.  헤겔이 권력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아니야. 하이데거가 권력을 말하는데 하나만 보고 다른 하나는 못 보고 있어. 한나 아렌트가 권력을 논했지만 틀려먹었어. 이러면서 니체, 슈미트, 바타유, 루만, 하버마스 등등을 건들고 시비건다. 건달이나 다름없다. 그러면서 자신의 논리를 구축해나간다.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다른 철학자를 언급하는 게 이해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창조적인 작업을 하기보다는, 기존의 이론을 해체하고 다시 뭉치는 작업에 가깝다.


글이 너무 어렵다 싶으면 다른 철학자 부분은 흘려서 보고, 저자의 논리에만 집중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언젠가 다들 철학자들의 이론도 속속들이 이해하는 날이 오면 좋겠으나, 꼭 오늘일 필요는 없다.



목차가 논리의 흐름을 적절하게 표시해주고 있다. 이정표를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제1장 권력의 논리


권력은 타자를 통해 자신의 결정을 실현한다. 이를 통해 타자 속에서 자신을 연속시키는 거다. 권력이 강하다면 타자는 자유를 느끼면서 복종한다. 권력의 의지를 마치 자신의 의지인 양 느끼고 알아서 따른다. 이때 자유는, 어울리지 않게, 권력과 결합한다.


권력에 복종하는 자가 스스로 권력자가 원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고, 권력자의 의지를 마치 자신의 의지처럼, 심지어 미리 알아서 따르려고 하는 것, 이것은 더욱 강력한 권력의 지표다.


권력이 약하면 폭력으로 바뀐다. 타자를 수동성과 부자유로 내몬다. 폭력과 자유는 권력의 양극단이다.


권력자에 대립적인 의지가 생겨나 그에 맞서게 된다는 사실은 이미 그 권력이 나약해졌다는 증거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권력은 이미 약화된 권력이다.


제2장 권력의 의미론


의미는 맥락이다. 무엇이든 의미연속체에 놓였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아버지가 있어야 아들이 있고, 회사가 있어야 대표가 있다. 갑자기 의미는 왜 나오나? 의미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의미의 지평을 만든다. 권력은 질서를 만들고, 그런 의미에서 권력은 생산적이다.


권력은 사물들이 그에 의거해 해석되는 의미 지평을 만듦으로써 사물이 의미를 갖게 만든다. 사물들은 권력관계 속에서 비로소 중요해지고 의미를 얻는다.


푸코에 따르면, 권력이 작용하는 방식은 세 가지다. 하나는 칼이다. 고문당한 신체에 권력은 자국으로 남는다. 다른 하나는 펜이다. 이제 노예는 사슬이 필요없다. 스스로 복종하기 때문에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는 칼이나 펜보다 우리 깊숙이 들어온다. 습관이다. 권력은 일상의 형태를 띤다. 보이지 않는다. 권력은 보이지 않을 때 가장 강력하다.


나는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내가 선택한 거다. 나는 4년재를 졸업했고 IT회사에 다닌다. 전셋집에 살고 있고,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역시 내가 선택한 거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천천히 생각해보자. 정말 내가 선택한 게 맞나? 마치 내가 선택한 것인 양 느끼게 만드는 것이 권력이다.


운명이 자유로운 선택인 양 체험되는 것이다. 피지배자들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자신의 상태를 자기 취향으로 삼게 된다. 빈곤이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 되고, 강제나 억압이 자유로 여겨지는 것이다.
절대적 권력이란 모습을 드러내거나 자신을 지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명성과 완전하게 합치되어 있는 권력일 것이다. 권력은 부재를 통해 빛을 발한다.


제3장 권력의 형이상학


형이상학이라니, 제목만으로 현기증 날 것 같다. 이 부분을 읽다가 내 정신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독자의 정신 건강을 위해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가겠다.


인간은 권력을 욕망한다. 타자를 통해서 자신을 확장(연속)하게 되고, 여기서 쾌락을 느낀다. 타자 또한 강요가 아니라 스스로 욕망해서 받아들인다. 여전히 나와 타자의 경계는 있다. 종교는 반대다. 존재의 경계를 허문다.


권력의 연속성은 자아의 연속성이다. 권력과 반대로 종교는 경계 없는 존재의 연속성의 경험과 결부되어 있다.


저자는 종교의 이러한 특성을 '친절함'이라 칭한다. 철학책에서 사용할 때는 일상 용어인 친절과 의미가 조금 다르다.


존재의 연속성을 보장하면서도 모든 것을 파괴하고 집어삼키는 불꽃 속에서 차이나 형태가 사라지지 않게 하는 정신, 그것이 친절함이다.


제4장 권력의 정치학


권력은 소통이다. 관계를 맺고 합의를 통해서 공통의 의지를 만들어낸다. 다른 한편으로 권력은 투쟁이다. 노예제, 공권력, 조직, 모두 권력의 한 양상이다. 소통과 투쟁,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둘 다 권력의 일부를 설명하고 있다. 권력은 그 자체로는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다.


에고가 타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권력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폭력은 무력無力의 표시다.


제5장 권력의 윤리학


이제 마지막 장이다. 권력의 특성을 가볍게 훑으면 아래와 같다. 권력은 타자에게 자신을 연속시키며, 의미와 개념을 만든다. 강력한 권력은 습관의 형태로 나타난다. 종교와 달리 타자와 자신을 경계짓는다. 소통의 측면, 투쟁의 측면이 다 있다. 그렇다면 이제 권력은 어떻게 해야하나. 권력이 가야할 방향을 마지막 장에서 그린다.


권력은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성을 약화시키는 것이 바로 권력의 윤리다. 이걸 '넓게 돌아보는 권력'이라 말한다. '정의'의 다른 말이다. 타자보다 나를 먼저 두지 않는 것을 말한다. 권력은 나 자신에서 촉발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이게 친절함이다. 나와 남의 경계를 없애는 친절함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스스로를 비운다.


푸코에 따르면 "자아의 윤리학과 자아의 미학"이어야 할 니체의 "권력 의지"의 철학은 무명無名의 학으로, 아무도 아닌 자의 윤리학과 미학으로, 의도도 바람도 없는 친절함으로 귀결된다. 니체는 자기 자신을 선사해버리라고, 자신을 아무도 아닌 자로 비워버리라고 요구하는 저 신의 목소리를 들었음에 틀림없다.



★★★★★ 이왕이면 더 강한 권력을!!



사랑하는 작가3 : 한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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