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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원댄싱머신 May 26. 2021

휴가일기

휴가


휴가 기간에는 시간이 얄밉게도 빨리 간다. 평일에는 진작에 일어나서 밥 먹고 나갔을 시간에, 늘어져 자고 있다.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었을 시간이 되어야, 겨우 일어나서 씻지도 않고 앉아있다. 그동안 미뤄놨던 일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다보면 점심시간이다. 아침은 당연히 안 먹었다.


점심


휴가 때는 보통 점심이 첫끼다. 요즘 굴소스를 이용한 볶음밥에 재미를 붙였다. 이것저것 던져넣고 화르르 불맛을 내본다. 요리하다보니 억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차라리 이럴 거면 오후 반차를 낼 걸. 오전에 알차게 일하고 점심 먹으면 딱 이 시간일 텐데.


치과


이를 닦고 치과를 다녀왔다. 다음주에 발치를 한다. 이뻐지는데는 비용과 고통이 따른다. 사람들은 자연미인과 성형괴물을 구분하지만, 그 차이는 오로지 절개 여부다. 일상적인 식이요법과 운동을 통한 체형관리는 기본이고, 피부관리와 값비싼 시술, 그리고 쇼핑에 쇼핑에 쇼핑... 이 전부가 대한민국을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꾸밈노동이다. 이가 아파서 잠시 흥분했다.


카페


3시가 다 되어서 겨우 카페에 들어왔다. 수요일 휴가의 목적지다. 그동안 미뤄왔던 책을 읽고, 마찬가지로 미뤄두었던 일기를 써야지. 여름방학도 아닌데 몰아서 쓰고 있다. 황교익과 엄지용의 책을 가져왔다.


황교익


원래 김치는 300종이나 된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식당에 가보면, 사계절 내내 배추김치가 나온다. 우리가 매일 배추김치를 먹기 때문에 중국에서 대량생산되는 것일까. 워낙 값싸게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가 매일 배추김치를 먹게 되는 것일까. 둘 다 일리 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다. 집에서는 배추김치 대신에 계절에 맞는 다양한 김치 먹기. 마침 집앞 반찬가게 사장님의 솜씨가 치과의사 뺨친다. 무채와 오이소박이는 기가 막힌다. 다음에는 다른 김치도 부탁드려야겠다.


엄지용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독립출판 시인이다. 이러쿵저러쿵 떠들 거 없이, 하나 소개하겠다. 읽어보면 왜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아저씨는 내 야근을 걱정하고 나는 아저씨의 야근을 걱정하며 달린 밤길이었다.
택시비 만 사천 원이길래 만 원짜리 한 장 오천 원짜리 한 장 전하고 괜찮다며 내리는데
아저씨가 굳이 천원 돌려주며 말했다

세상 짠데 혼자 달아 뭐해요
우리 손님도 짜게 살아 짭조름하게

 _엄지용 「짭조름」


열심히 읽고 쓰다보니, 수요일 휴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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