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글에서 밝힌 것처럼, 남들 꿈 이야기를 하다보니, 나도 잊고 있던 꿈이 떠올랐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꿈이다. 팍팍한 삶을 살다 보니 (사실 슬렁슬렁 살았다) 잊어버렸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벅찬 구체적인 장면이 있다.
과일 판매
그건 바로 대학교에서 과일을 파는 거다. 대학교에는 건물이 많고 그 사이사이를 학생들이 돌아다니는데,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터에서 과일을 팔고 싶다. 아침을 못 먹은 아이들에게 들고 먹고 좋은 바나나와 바로 먹기 좋게 자른 사과를 파는 장면을 꿈꿨다. 그런데 이 장면은 몇가지 이유로 수정에 수정을 거쳐서 누더기 법안이 되었다.
처음에는 과일을 돈 받고 파는 아저씨였으나 금방 수정했다. 과거의 내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나는, 몸이 자라지는 않았지만 여러모로 성장기였는지, 항상 배고팠고, 주머니는 공복이었다. 그래서 바꾸었다.
과일 무료 배포
과일을 V3처럼 무료배포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안철수처럼 정치 입문해서 서울시장 양보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시 학교 식당에서는 2~3천원에 간단한 아침을 판매했다. 핸드폰 요금도 몇 달씩 밀렸던 대학생에게는 감사한 가격이었지만, 맛이 없어서 잘 안 먹었다. 나는 대신에 과일을 사 먹었다. 비싸서 많이는 못 먹었다. 지금은 이마트 가면 포도니 참외니 수박이니 가격은 신경도 안쓰고 쓸어담지만, 대학생 때는 주로 바나나나 귤, 사과 정도만 사먹었다. 물 건너온 비싼 과일은 엄두도 못 냈다. 그게 참 속상했다.
그러다 꿈을 다시 수정했다. 안철수 흉내 내면서 과일을 무료 공급하면, 다른 과일 가게는 어떻게 되는 거지? 대기업이 골목상권 들어와서 깽판치는 것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료 배포는 포기했다.
과일 저렴하게 판매
대신에 근처 과일 가게와 콜라보를 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어차피 상상이면서 별걸 다 고려했다. 과일 소매상을 통해 과일을 유통하고 저렴하게 판매한다. 물량이 커지면, 학생도 저렴하게 과일을 먹을 수 있으니 좋고, 과일 소매상도 규모의 경제로 이득을 보게 될 거다.
카페
이런저런 사정 다 고려하며 바꾸고 바꾸다 결국엔, 모든 직장인들의 로망, 카페로 왔다. 나라고 뭐 특별한 꿈이 있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한가 보다. 나도 카페 하고 싶다. 물론 차이는 있다. 카페에서 과일을 파는 거다.
과일 카페
아메리카노를 하나 시키고 앉아있으면, 슬쩍 가서 수박 자른 걸 건넨다. 녹차를 마시고 있으면, 또 슬쩍 가서 복숭아 자른 걸 주고 온다. 물론 판매도 한다. 오늘의 커피를 저렴하게 파는 것처럼, 오늘의 과일을 파는 거다. 그날그날 저렴하게 가져온 녀석들로 한다. 그래서 오늘의 과일은 못생겼다. 이쁜 과일만 마트에 나간다. 못생겼지만 마트로 나가지 못하는 과일은 이렇게 카페로 온다. 이쁘게 잘라서 그럴듯한 조합을 만들면 된다.
과일 독서모임
꿈은 이루어진다. 일부는 시도해봤다. 서점 겸 독서모임 공간을 운영했을 때다. 사람들 먹인다고, 사과 깍고 수박 자르고 했지만, 열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나중에는 귀찮다고 각자 까먹는 귤로 바꾸었다. 귤이 나오는 계절이 지나가면서, 과일 제공도 중단했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나눠주고 싶다. 아마 인간의 본능일 거다. 나는 과일을 좋아하고, 사실상 식사 대용으로 먹고 있고, 그래서 어떻게든 나눠주고 싶은가 보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별 재미도 없는 개인적인 꿈 이야기를 너무 장황하게 늘어놓았나 걱정이 된다. 어쩌겠나, 여기가 사실상 내 일기장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