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비슷한데 역시 비슷비슷하다
카페에 가면 카푸치노를 자주 마신다. 카푸치노, 카페라떼, 카페모카, 마키아토, 아인슈페너, 플랫화이트 등등, 커피 종류는 엄청 많다. 어르신들은 카페에서 주문하기도 쉽지 않다. 나도 내일모레면 어르신이라 그런지, 커피향 솔솔 나는 영어 메뉴판에 압도당해 땀을 뻘뻘 흘린다. 땀을 닦으며 카푸치노를 시켜보았는데, 맛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카푸치노를 주로 마신다. 어차피 내 입맛에서는 다 비슷비슷하니까, 익숙한 걸로 간다. 고르는 것도 고역이다.
사실 차이가 있기는 하다. 에스프레소espresso는 머신으로 뽑은 커피 원액이다. 조금 빨리 뽑으면 리스트레토ristrreto라고 부른다. 그대로 먹기에는 조금 진하다. 그래도 유럽인들은 촥 원샷으로 들이켰는데, 미국 사람들은 물을 타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물을 섞으면 아메리카노americano다.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어무에리카노. 보통은 블래액 커퓌라고 한다. 이와 조금 다른 게 롱블랙longblack이다. 보통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서 아메리카노를 만드는데, 호주에서는 물을 미리 부어놓고 에스프레소를 추가한다. 이를 롱블랙이라 부른다. 그게 그거다.
비슷한 게 하나 더 있는데, 따로 물을 추가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머신으로 내린다. 물을 많이 부어서 결과적으로 아메리카노처럼 묽게 나온다. 이건 룽고lungo라 부른다. 오랫동안 압출하기 때문에 커피 맛이 더 강하다. 나도 집에서 커피 마실 때는, 따로 물을 끓이기 번거로워서 오랫동안 커피를 내린다. 의식하지 못하고 룽고를 마시고 있던 거 였다.
여기에 우유를 부으면 카페라떼caffe latte가 된다고 하는데, 사실은 우유와 우유거품을 넣어야 한다. 카푸치노cappuccino도 우유와 우유거품을 넣는다. 둘의 차이는 비율이다. 우유가 더 많으면 카페라떼, 우유 거품이 더 많으면 카푸치노라고 부른다. 부드러운 거품이 수북하다. 바로 먹지 않으면 일본 부동산처럼 금방 내려앉는다. 카푸치노에는 시나몬 가루를 뿌린다. 시나몬은 계피와 약간 다르다. 원산지도 다르고 형태와 맛도 차이가 있다. 시나몬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계피는 맵고 쓴 맛이 있다. 한약재다.
카페라떼에 초코시럽을 넣고 휘핑크림까지 얹으면 카페모카cafe mocha가 된다. 카페라떼에 바닐라 시럽이 들어가면 카라멜 마키아또caramel machiato라고 부른다. 미국식으로 발음하면, 카아멀 마키아로, 혹은 케러맬 마키아로다.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넣으면 아포가토affogato가 된다. 결국 그게 그거다.
프라푸치노frappuccino는 스벅에서 만든 메뉴다. 다른 카페에서는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갈아넣은 얼음으로 유명한 이 메뉴는 프라페frappe와 카푸치노cappuccino의 합성어다. 그리스에서 자주 마시는 프라페는 인스턴트 커피에 우유와 설탕, 그리고 얼음을 넣어서 만드는 달달한 커피다.
거품의 강자답게, 일본은 커피가 유명하다. 특히 핸드드립이 뛰어난데, 전통적인 다도 문화의 영향인 듯하다. 드립커피로 유명한 블루보틀도 일본의 카페 문화를 참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 비슷비슷해서, 일본에 가서도 스타벅스에 들렀다. 그냥 코히 외치면 될 걸, 괜한 도전의식이 발동되어, 녹차라떼에 샷을 추가했다. 맛차라테 숏토 츠이카 구란데사이즈데 오네가이시마스! 고생해가며 외운 문장을 어떻게든 말하고 나면, 묘한 성취감이 든다.
커피 맛이 비슷하다고 자꾸 주장하는 건, 내가 무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민한 사람은 차이를 안다. 드립커피와 에스프레소 중 어느 걸 좋아하는지는 물론이고 에스프레스 중에서도 스타벅스는 어떻고 커피빈은 어떻고 하며 원두를 따질 줄 안다. 의도하지 않아도 더 나은 걸 찾게 된다. 자연스럽게 미식가가 된다. 대신 삶이 피곤하다. 남 배려, 남 걱정을 많이 하는 대신 스스로를 챙기기 어렵다. 내적 강함이 더욱 요구된다.
무던한 사람은 차이를 모른다. 모카포트에 끓이던 카누에 미지근한 물을 들이붓던, 그냥 커피네.. 한다. 더 나은 거 없냐고 굳이 찾지 않는다. 삶은 그럭저럭 살아갈만 하다. 대신 주변 사람이 피곤하다. 불편함을 못 느끼니 눈치도 없다.
가끔은 스스로에 대한 눈치가 없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다. 마치 호수를 둥둥 떠다니는 백조처럼. 아무리 둥둥 떠다녀도 아무리 무던해도, 사람은 다친다. 그러면 내면의 상처를 미리 발견하지 못하고 키운다. 나는 괜찮아~ 라고 항상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만, 가끔은 이유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나올 것 같다.
아래 글을 수정해서 작성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