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안철수는 항상 선거 직전까지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다가 결국 떨어져버린다. 이런 안철수가 러닝을 한다는 건 은유적이다. 100미터 달리기를 빨리 달리는 것도 아니고, 일정한 거리를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린다. 마라톤에 참가하기도 한다.
미디어(무릎팍 도사)의 영향으로 전국민의 신망을 얻고,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기를 바탕으로 청춘콘서트를 진행했다. 내친 김에 정치판에 뛰어들었는데, 이때 보인 모습은 파격적이었다. 양보. 나보다 더 잘할 것 같은 정치인이 있다면 과감히 양보한다. 지지자를 거느린 정치인으로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선택지다. 이걸 안철수가 해버렸다. 선의로 시작된 양보는 이후 타의에 의한 양보로 전환되면서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다.
소통형 정치인이 아니라서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안철수계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그의 속내를 궁금해하고 답답해한다. 마찬가지로 불통형 정치인인 박근혜는 이따금 쇼라도 하는데, 안철수는 쇼통도 소통만큼 거부해서, 답답함은 배가 된다. 그렇다면 살갑게 소통하지 않고, 혼자 오랫동안 고심해서 주변 사람 답답하게 하고나서야 행동하는 정치인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가.
모모
독일 소설 모모에는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이 나오는데, 주인공인 모모가 그 시간을 다시 찾아온다. 모모의 친구로 베포라는 할아버지가 나온다. 나는 안철수를 생각하면 그가 떠오른다. 안철수가 선거에서 지면 삐져서 해외로 도피했다가 정신차리고 멘탈 챙겨서 다시 돌아오듯이, 베포도 오랫동안 생각을 정리한 후에야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질문에 대해 곰곰 생각했다. 그리고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지면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대답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오래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대개는 두 시간, 때로는 하루 종일 생각했다가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때쯤에는 상대방이 자신이 무슨 질문을 했는지조차 잊어버리기 일쑤였으니, 베포의 뒤늦은 대답에 머리를 갸웃거리며 이상한 노인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미하엘엔데
#모모
좋은 정치인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몇 있다. 대부분 소통형 정치인이다. 오늘날 미디어와 정치가 밀접하게 결합되어서, 정치인은 이제 어떻게든 미디어에 노출되려고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선거제가 바뀌어 정치의 미디어화 경향은 앞으로 더 심해질 거다. 그러면 불통형 정치인의 입지는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정치인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우리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과 더 좋은 입장을 제시하는 것. 안철수에게 전자는 큰 기대하지 않는다. 후자는 소리지르는 것만큼 잘할 거다. 오래 숙고한 만큼 자신의 결정을 믿고 나아갈 수 있다.
거듭되는 실패에도 그만두지 않고 여전히 정치판에 기웃거리는 그를 응원한다. 청춘콘서트 때와는 달리 멸시 받고 괄시 받지만, 여전히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그의 잠재력은 마라톤에 어울린다.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해보려고 한다. 지금 국민의당이 지지율도 나오지 않고 뾰족한 수도 보이질 않으니, 분명 또 습관처럼 창당을 하게 될 거다. 그때 당명은 '나는 달린당'이 좋겠다. 코로나로 인해 여러명이 함께 하는 스포츠는 시들하다. 4명 가지고는 축구를 할 수도, 야구를 할 수도 없다. 대신에 혼자 조용히 달릴 수 있는 퇴근 후 도심 러닝이 뜬다. 시간 약속을 잡아서 모이지 않아도, 각자 짬을 내서 달릴 수 있기 때문에,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MZ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하고 있다. '나는 달린당'의 이름으로 다시 대권에 도전한다면, 이들이 투표장까지 운동 삼아 달려가게 될 거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