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랗고 귀여운) 대형책 + (작고 묵직한) 소형책
작은 핸드백에 쏘옥 들어가지 않으면 책이 아니다.
벽돌이다.
손으로 자르고 붙이며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책마다 모양이 미세하게 다를 수 있다.
빠이
고양이산의 전설, 필요 이상으로 귀여운 고양이 동화책
이정현
휴가 계획이 없던 직장인은 어디로 떠나는가, 무작정 휴가 에세이.
넥타이를 맨 사람들과 함께 지하철을 기다리며 어깨가 우쭐해졌다. 돈을 벌러 나온 사람들 사이에 돈을 쓰러 나온 나란 사람. 보통 갑과 을의 관계가 그렇다. 착각도 잠시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지하철엔 여행 가방과 캐리어가 늘었고 금방 북새통이 되었다. 놀이공원도 아닌데 출국장은 여기저기 늘어선 줄로 미로를 만들었다. 참고로 코로나는 한 5년쯤 뒤에 지구를 습격한다. 아무튼 난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마일리지를 쌓던 항공사 부스를 찾았다. 아무 데나 빨리 갈 수 있는 거 한 장만 주세요.
공항에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생략한다. 이 책은 미니북이다. 정신 차리고 쓰지 않으면 분량을 훌쩍 넘겨버릴지도 모른다. 아직 본격적인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삼분의 일이나 썼다니 용두사미의 조짐이 보인다. 결국 난 한 가지 교훈을 얻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쿨하게 해외여행을 떠나는 건 절차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이런 성수기에는.
이태원댄싱머신
손해 보는 성향에 대한 역사적 분석, 고증 에세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배운 거랑 살짝 다르다.
항상 손해 보는 성격이 있다. 내꺼 니꺼 따지기 싫어서 그냥 주어버리고 마는 성정. 어머니가 그랬고, 내가 그렇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봐도, 어머니가 뭘 내꺼라고 주장하는 걸 본 기억이 없다. 하다못해,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내가 그래서 하지 말자고 했잖아' 라는 식의 말도 들어본 적 없다. 항상 남에게 양보하고 남에게 공을 돌렸다. (유일하게 자신의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할 때는 메뉴 고를 때 뿐이다. 회, 회를 먹자! 그래서 항상 회를 먹었다.) 따뜻하게 표현하자면, 관대하고 너그럽다. 차갑게 분석하자면, 회피적 성향이거나 안정적 성향이다. 오늘은 아이스아메리카노 마셨으니까 차갑게 간다. 어머니는 회피적 성향일까, 아니면 안정적 성향일까.
이리아
반짝이는 유리가 되고 싶었던 아이의, 돌멩이 에세이.
흘러왔고 흘러간다. 지금도 흘러가고 있고 미래에도 끊임없이 흘러갈 것이다. 흘러감에 끝은 없고 눈을 감고 기억이 사라질 그날에서야 우리는 흐름을 멈춘다. 아니 어쩌면 또 다른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일지도.
흐름 속 단 하나의 반짝거리는 유리가 되고 싶었다. 아니 사실 되어야 하는 줄 알았고 그것이 당연했지. 주위의 흘러가는 모두의 눈은 반짝. 내 눈도, 모래알도 반짝. 모든 것이 반짝. 내 옆으로 굴러오는 하나의 자갈과 하나의 모래는 자신들의 몸을 깎으며 나를 뒤따르며 반짝. 우리는 모두 반짝. 과거. 현재. 미래 나는 아마 항상 반짝.
깐난
오로지 영화와 나만 있어야 할 그 순간에 강렬하게 끼어드는 존재가 있다.
극장에서 만난 악당에 대한 추억, 관크 에세이.
어둡고 조용한 극장에 앉아 내 눈 한가득 오로지 영화만 담는 시간은 정말 짜릿하다. 불행히도 그 경이로운 순간을 악 소리가 날 정도로 부숴버리는 것들이 있다. 일명 관크.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는 놈들. 역사가 깊은 전남친을 길에서 마주쳐도 괜찮을 나인데 관크들은 아무런 서사 없이 나타나는 주제에 내 평정심을 깨뜨린다. 아무리 훌륭한 영화여도 아무리 좋은 기술을 탑재한 상영관이어도 영화를 같이 보는 ‘누군가’가 잘못 걸리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관크에 관한 에피소드는 끝없이 생성되고 업데이트 되는 중이다. 심지어 TV 뉴스에 데뷔한 관크도 있다. 심각한 사례는 매우 많지만 내가 직접 만난 자들 중에서도 소수만 골라봤다.
정담아
소중한 관계를 돌보는, 용기 내어 보내는 편지 에세이.
서울행 비행기에는 잘 탔니? 나는 이제야 방을 치우고 처음으로 이곳 제주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어. 물론 혼자이지만 여전히 네가 남기고 간 흔적들이 꽤 많아. 그것들을 쓸어 내고 네가 까맣게 잊고 흘리고 간 물건도 챙겨두었어. 다 정리를 하고 나니 밀려오는 허기를 채우려고 냉장고를 열었어. 어젯밤 네가 삶아 둔 달걀은 내가 좋아하는 반숙으로 딱 알맞게 아주 잘 익었고, 네가 우겨서 샀던 사과는 살짝 맛봤던 그것보다 훨씬 달콤했어. 네 덕에 든든하게 차 오른 배를 두드리며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지금 밖에는 매서운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어. 네가 지나는 하늘은 평온하니?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은 아주 평화로워. 네가 콜록이던 인센스 스틱 향만이 존재감을 드러낼 만큼. 그 고요함 속에서 수많은 흔적을 남기고 간 너를 떠올리고 있어.
마리뮤
명절은 문명의 충돌이다. 예상치 못한 심심함의 충돌, 추석 에세이
몇 시간째 작은방에 갇혀 있다. 점심식사 후 설거지까지 말끔히 마친 다음 작은방에 들어왔으니 한 세 시간쯤 지났을 것이다. 남편 밥에 누가 수면제라도 탔던 걸까? 그는 여태 코를 골며 자고 있다. 남편은 본인의 천둥 같은 코골이에는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주변의 작은 기척에는 바로 깨버리는 예민한 인간이라 최대한 방해가 되지 않도록 누워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중이다. 부동산 카페에 들어가서 예의주시하고 있는 동네 게시판 글을 쭉 훑고, 구독하고 있는 브런치 작가의 밀린 글을 정독하고, 간만에 인스타도 들어가 친구들이 올린 여행사진이나 아이들 사진을 빠짐없이 챙겨 봤는데도 남편은 물론이고 시부모님의 기척은 없다.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준비하고 분주히 집안일을 하신 어머님이 낮잠을 주무시는 것은 이해가 가고도 남으나 시댁에 와서 기껏해야 식탁에 반찬 좀 나르고 내가 설거지할 때 옆에 와서 조금 거드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남편은 왜 여태까지 일어나지 않는지 정말 의문이다.
김베르
읽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한, 자기계발 에세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읽은 자기계발서는 2007년에 출간한 그 유명한 「시크릿」이었다. 그 당시 도대체 시크릿이라는 책의 시크릿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고, 그 내용에 크나큰 충격을 받고 그 뒤 다시는 '자기계발서'라는 카테고리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mopo
과일과 사랑에 빠지고 권태를 겪고 새로운 과일을 만나는, 문란한 과일 편력 에세이.
여름이 되니 단연코 수박이 생각난다. 사실 수박은 거의 완벽하다. 달달한 맛과 충분한 수분, 아무리 먹어도 충분한 양. 수박 한 통이면 여러 가족이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