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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시시 Nov 17. 2021

나를 사모님이라고 불렀다

풀기 어려운 스트레스, 층간소음

032-816-****번호다. 누구지? 어디 수강 신청해 놓은 곳에서 안내전화를 했나?

“저기, ㅇㅇ아파트 ㅇㅇ동 ㅇㅇ호 사시는 사모님이시죠~?”

순간, 직감이 왔다. 또, 민원전화구나.

이젠 관리실 직원의 말을 듣지도 않고 다음 말을 생각한다.

‘아.. 뭐라고 하지..? 최근에 아이들이 시끄럽게 한 적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데..?’

혹시 내가 생각 못 하거나 인지하지 못했을까 싶어 열심히 생각해도 그런 기억은 전무후무했다.


관리실 직원이 정중하게 말한다.

“1층에 사시는 데에는 이유가 있겠지만, 1층이라도 소리가 올라오더라고요…”

역시… 똑같은 레퍼토리다. 직원의 입술이 쉽게 떨어지지 않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사모님’이라는 존칭을 꼭 붙이며까지 말을 하고.

맞다. 1층으로 이사 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1층 집에 들어오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다른 층에 집이 나도 보러 가지 않았고 1층 집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들어와 4년째 살고 있다. 민원 전화를 받기 시작한 것은 작년이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그리고, 여름에 이사 온 3층 모녀와의 인연이 생긴 이후부터.




어느 날 3층 집이 이사 나가고 리모델링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사는 아파트가 20년이 넘어 이사 전 수리하는 집이 꽤나 있다. 방음이 비교적 잘 된 편이라 다른 집이 리모델링해도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집, 3층은 너무 시끄러워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아마도 공사를 크게하나보다. 작년같은 경우, 교육이 마비상태였고 코로나가 어떤 건지 잘 몰라서 정말 집 안에서만 지냈다. 하지만 소음이 지나쳤기에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산책하기를 며칠간 반복했다. 공사기간이 끝나고 3층 모녀는 우리와 같은 건물에 살게 되었다. 우연히 만난 그분은 묻지도 않은 것을 말했다. 남편은 멀리에서 지내고, 자기는 딸과 둘이 지낸다고 말이다. 이후에 코로나로 인해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서 살게 되면서 그 모녀의 스트레스가 커져갔나 보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던 그분은, 아이들과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보며, 오랜만에 말을 걸어왔다. 마치, ‘너 잘 만났다’하는 기세로 말이다. 이야기가 길어질 태세라 아이들을 먼저 들여보냈다. 3층에 사시는 분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내가 그동안 많이 참았어요. 코로나도 있고, 아파트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더는 안 되겠어요. 내가, 너무 소란스러워서 막 심장이 뛰고 잠을 못 자겠어. 내가 고등학생인 딸이랑 대개 지내는데, 우린 실내화를 신고 까치발까지 들고 다녀요. 혹시라도 우리 때문에 피해갈까봐, 정말 조심하면서. 그런데 새벽이고 밤이고 어디서나는 소린지 그 소리에 자다가도 깬다니까요. 아파트 탓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전에는 이런 소음 모르고 살았는데, 여기 이사 오면서 잠을 제대로 못 자니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워요. 내가 이 집에 전세로 들어오긴 했지만, 이 집은 잘 못 지어도 너무 잘 못 지은 것 같아~”


아.. 이 분 많이 예민하시구나..라고 생각했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성격이, 갑작스런 상황이 닥치면 늘 당황한다. 남편이었으면 이럴 때 뭐라고 말했을까? 임기응변에 강하고 비교적 답을 잘하는 남편이 몹시도 보고 싶었다. 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은 나는, 일단 그분의 불편함에 공감해주었다. 오히려 그분 편에서 말했다. 그동안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참다참다 내려오셨냐면서. 그분 마음이 좀 편해지고나서야 내 할 말을 조심스레 했다. 마무리야, “조심하겠다”였지만 말이다.  이런 민원을 1층에 살면서 받아보니, 기분이 묘하다.


이후로도 이 분은 두어 차례 더 내려오셨다. 아.. 직접 이야기하는 건 불법인데 자꾸 찾아오시니 나도 서서히 불쾌해졌다. 전세를 살고계신다고 하니 2년 후에는 안 볼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함께, 4년간 정든 이 집을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층간소음 때문만은 아아니다.아이들은 정서적으로, 땅과 가까이 지내고 경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에 더욱 전원주택에 대한 간절함이 생겼다. 너무 마음이 안 좋아 그날은 애들도 방치한 채,  컴퓨터로 ‘단독주택’ 내지는 ‘전원주택’을 검색했다. 이런 집에서 살면 더 이상의 스트레스는 없을텐데. 아파트처럼 관리해주지는 않아 직접 집을 관리해야 한다는 부담과 어려움이 때론 따를지언정, 마음껏 뛰놀아야 할 때 뛰고 즐기고 탐색하는 아이들에게, 그만한 최고의 환경이 있을까 싶기에 나의 검색질은 하루 온종일 이어졌다. 현실은, 그만한 경비가 충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시댁 앞에 너른 땅이 있기에 그곳에 집을 짓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수도권과 거리가 멀어져서 아이들 교육이 문제였다. 유사시 병원도 문제가 된다. 시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곳이 꽤나 시골이기 때문이다. 또, 그렇잖아도 어린아이들을 키우느라 내 행동이 굼뜬 상황이 생기는데, 가까이에서 보시면 얼마나 답답해하실까 싶은 생각도 든다. 희생하는 삶을 사시던 분이 나부터 챙기려는 며느리의 모습을 보며, 시부모님이나 나나 서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느새 일 년이 지났다. 때가 되면 사모님이라 불리는 난 여전히 이 아파트 1층에 살고 있다. 그리고, 오랜만에 민원전화를 받았다. 그분도 여전히 이 아파트 3층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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