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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시시 Mar 08. 2022

무지, 무관심, 무책임은 죄가 될 수 있습니다.

투표권, 꼭 행사하세요~!

어려서부터 신문과 뉴스를 챙겨봤습니다.

신문은 가장 먼저 ‘오늘의 프로그램’을 찾아봤습니다. 다음은 네 칸 만화, 사설, 마지막에 헤드라인 기사를 읽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뉴스와 신문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신문은 자연스레 중학생이 되면서부터인 것 같습니다. 요즘 책 잘 읽는 아이들도 중학생 되면 ‘시간이 없어서’ 못 읽는 것과 같은 원리였던 것 같습니다. 비록 공부는 안 했지만, 학교 수업이 워낙 길어서 텔레비전을 챙겨볼 수 없었으니까요. 뉴스는 초등 고학년 어느 날부터였습니다. 뉴스를 켜면 온통 사회 부조리 - 부정부패, 싸우는 정치인, 흉흉한 사회 이야기로 가득 차, 보고 싶지 않았습니다(그때, ‘내가 어른이 되면 저런 무리를 깨끗하게 해 주는 사람이 될 거야’와 같은 포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안타깝게도 책을 읽지 않았고, 종교가 없던 저는 당시, 발전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회피하고 싶었을 뿐이었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세상이었어요.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내 능력 밖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점점 정치와 멀어져 갔고, 정치 사회와는 무관심한 사람으로 자라났습니다.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는 사실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몰라, 부모님의 영향을 받거나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이런 제게 생각을 전환해준 책이 있으니, 바로 브룬힐데 폼젤의 <어느 독일인의 삶>입니다.




난 책임이 없어요. 어떤 책임도 없어요. 대체 뭣에 책임을 져야 하죠?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어요. 그러니 져야 할 책임도 없죠. 혹시 나치가 결국 정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독일 민족 전체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만요. 그래요, 그건 우리 모두가 그랬어요. 나도 물론이고요.(208p)


브룬힐데 폼젤 양은 독일 나치 정권의 선전 장관인 괴벨스 밑에서 속기사로 일했습니다. 자신의 친한 유대인 친구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그녀는 그들이 왜 사라지는지 몰랐습니다. 부모님의 인품 좋은 유대인 친구들이 가게문을 하나 둘 닫아갈 때에도 그녀는 왜 그랬는지 몰랐습니다. 그녀가 나치 정당의 중심부에 있었으나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오히려 ‘괴벨스 밑에서 타자를 친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다’며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고 하죠. 위에서 내려온 서류가 오갈 때에도 자신은 무슨 내용인지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에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성장배경을 말합니다.

한 번은 폼젤 양(맏이)의 동생들 중 한 명이 먹을 것을 몰래 훔쳐먹었다가 아버지께 단체로 혼나는 등, 어려서부터 단체생활이나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부모님의 정치적인 성향에 있어서도 묻거나 관심을 가지면 안 되었다고 말하고요.

정치에 대한 무지, 무관심, 상사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 이 모든 것이 성장과정으로 인한 것이며 자신은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저 자신은 의무감이 투철했으며, 성실했다고, 나쁜 일이건 좋은 일이건 상관없었다고 말입니다.


완전히 잘못된 예언으로 사람들을 호도한 나치 자신들, 즉 나치 지도부만 빼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었어요. 어떤 특정한 사람들이나 계층만의 무관심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오늘날에도 늘 반복해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무관심을 말하는 거예요.(216p)


세계 1차 대전으로 독일이 어수선할 때, 등장한 인물이 히틀러입니다. 폼젤 양의 말에 의하면,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잘 몰랐으며 그 인물이 수상이 될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심지어, 히틀러 자신까지! 그 정도로 히틀러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서 한 나라의 책임자가 된 거죠. 미처 신경 쓰지 못하던 영역에서 이처럼 괴물과 같은 이가 등장한 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당선된 그를 축하해주러 박수치며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겁니다.


우리는 폼젤 양에게 함부로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줄곧 말했던 무관심은 지금 우리에게도 볼 수 있으니까요.




폼젤 양으로 하여금 제 이야기도 달라집니다.


우선, 10년 넘게 육아가 이어지며 아이에게 모든 초점이 맞춰있던 제가, 이젠 기본적으로 뉴스에 관심을 갖고 라디오를 챙겨 듣습니다. 신문도 읽고 뉴스를 풀로 챙겨보면 좋겠지만, 세 아이의 엄마인 저는 엉덩이 붙이고 앉아 무언가를 챙겨볼 만큼의 시간과 여유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설거지할 때 뉴스라도 들으며(가끔 보기도 하구요) 큰 이슈를 알거나 정시, 사회에 관심을 갖고 생각을 합니다.


또, 전에는 수동적으로 투표했다면 이제는 능동적으로 투표합니다. 투표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난 잘 모르니까’, ‘어련히 똑똑한 다른 사람들이 투표 잘하겠어?’라는 막연한 생각도 했습니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이었는지,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압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투표권이 얼마나 소중한지. 정치, 사회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 투표날이 되면 평소 눈여겨보았던 정치인을 뽑고 정당을 뽑는 것이  억지로 해야 함이 아닌 주체성을 가지고 마땅히 행사해야 하는 권리임을, 우리의 미래와 직결되어 있음을, 너무도 당연한 것을, 모르면 찾아가며 관심을 가져야 함을.. 부끄럽지만 이제야 깨닫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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