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역마살이 끼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침에 겨우 눈을 뜨면 '출근'이라는 것을 해냈지만, 퇴근 이후 집으로 직행하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북적대는 직장에서 발을 떼어, 쓸쓸한 자취방에서 저를 기다리는 것은 불을 켜줄 이 없는 어둠뿐이었습니다. 혼자 있을 공간을 향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는 역마살이 끼었어."라는 소리를 듣게 만든 것은 아닐까, 책임을 떠넘겨 봅니다.
중고등학교 때도 온순하게 지나간 사춘기가 대학 때 왔습니다. 예상을 비껴간 수능 결과와, 대학에 대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패배에 대한 인식이 컸고, 나 스스로를 낮고 작아지게 했습니다.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로, 저는 늘 분주하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움직이기에 바빴어요. 그게 당연한 것이고, 나를 위로하는 방법이라 생각했거든요. 자기 계발을 위해 자격증을 비롯한 다른 과정을 수료 및 이수했습니다. 편입으로 공부하며 바쁜 삶에 채찍질도 해 보았고요. 당시 연락하던 친구도 많아서, 매일 친구를 만나 수다 떨고 예쁜 음식들을 먹으며 적적함을 달랬습니다. 음식에 돈을 쓰고,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며, 말 잘 통하는 친구와 시간을 보냈음에도 제 마음은 방울방울 터지는 비눗방울처럼 비어 있었습니다. '군중 속의 외로움'이라는 생각이 늘 가득했고,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내면을 채웠으며, 과거를 추억 삼아 슬픔에 젖기 일쑤였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쩌지 못하며 시간은 매일같이 사라져만 갔습니다.
한 때는 헬리콥터 프로펠러처럼 쉴새없이 누군가를 만났다.
내가 지나온 상황: 독박 육아, 그리고 책
이러던 제가 독박 육아를 10년간 했습니다. 눈뜨면 밖에 나가고, 사람을 만나며,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때론 해야 할 일을 찾던 모습이었는데, 이런 제가 아이를 낳으며 동굴 속에 있기를 자처했습니다.
'아기'라는 존재는 제게 긍정적인 존재만은 아니었어요. 어느 날 떡하니 눈앞에 놓인 이 아기는 저를 보며 생글생글 웃어댔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아기 엄마라고 불렀고요. 저에게 엄마..라는 소리는.. 참 듣기 불편했습니다. 여태 딸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왔지 엄마로 살아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마음은 아직 철부지 아이 같은데, 이제 '엄마'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아마도, 엄마라는 이름의 존재, 책임감, 무게감에서 거부감을 느낀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 강제적으로.. 저는 엄마가 되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찬바람 부는 겨울이 찾아왔고, 행여나 아기가 감기 걸릴까 외출을 꺼리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제 안에 역마살 기운이 남아서, 인천 끝자락에 사는 저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전철을 타고, 이전에 살던 동네, 서울을 향해 한 시간을 넘는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유모차를 끌고 전에 일하던 먼 거리의 직장에도 찾아갈 만큼, 저는 여전히 밖을 찾는 사람이었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체력 좋은 '아기 엄마'였습니다.
사람 만나며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제가, 우울과 공허함이 늘 가득 차 있던 제가.. 이렇게 10년을 아이만 키우며 지냈네요, 그 흔한 산후 우울증도 없이.
10년이라는 기간이, 힘들고 답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아이의 반짝이는 눈이 사랑스러웠고, 엄마 아니면 안 된다는 아이의 껌딱지 심리가 아이에 대한 사랑과 애착,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동안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인내와 신뢰가 생겼습니다. 무엇보다 육아를 통해 나의 유년기를 돌아보며 성장하는 시간을 갖게 된 '10년'이라는 기간은, 한 때 역마살 꼈다는 소리를 듣던 제가 더 이상 역마살 낀 사람이 아니며, 매일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사는데 지장이 없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육아하며 아이를 통해 얻은 독서습관은, 제게 더 이상 외로움, 쓸쓸함, 좌절감, 열등감을 안겨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을 한데 모아, 아주 멀리 날려 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습니다. 제 안에 참 성장이 일어나, 갇혀있던 알을 깨고 나오게 된 겁니다. 나 스스로를 옭아매던 쇠사슬을 던져 푸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이런 내가 되기까지, 그 중심에는 책이 있습니다. 책을 읽으면 마음이 잔잔한 호수처럼 평안하고, 묶임 없이 하늘을 날듯 자유해졌으며, 흉하게 비치던 거울에서 본연의 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집근처 작은 도서관
생각의 전환, 그리고 찾아온 변화
다른 사람의 말은 때때로 자기 자신이 못 보던 모습이나 상황을 인지시키기도 합니다. ‘타인의 말’이라는 새장 안에 갇혀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체념하며 새장 안에서 살게도 하지요. 그 새장은 창살이 없는 새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에도 나가지 못하게 만들지요. 기존의 이념, 사고방식, 한정된 공간을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바로 발상의 전환이나 색다른 경험입니다.
각자의 때에 각자의 경험으로 생각이 바뀌고 이전과 달라진 삶을 경험할 때, 진정한 삶은 시작됩니다. 나를 발견하고, 나를 찾아갈 때, 진정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해가는 기쁨과 성취가 한 사람의 삶을 가치 있게 합니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휘둘림 당하지 않고, 나 스스로가 최고의 응원가이자 지지자가 되는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제겐 책이 그 수단이었고 글쓰기가 촉매제였습니다. 꼭 책과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여행, 낯선 경험은 한 사람의 사고를 변화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