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존재다. 혼자서 지내려면 언어가 필요 없다. 공동체적 존재이기에 언어를 사용한다. 언어를 왜 쓰는 걸까? 언어는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다. 문자언어나 음성언어로 생각을 표현하고, 그것은 소통의 도구가 된다.
소통이 없는 집
아이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친구와 소통을 하지 않는다면, 그 아이는 혼자 지내게 될 확률이 높다. 누군가 관심을 갖고 아이에게 다가갔는데 반응이 없다면 누가 다가가고 싶겠는가. 흔히,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방에 들어가 안 나온다고 한다. 부모와는 말이 안 통하니 말을 안 하겠다는 것이다. 혹은 혼자 있고 싶다는 뜻이다. 같이 지내는 부모 입장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의 문을 닫는다는 것이고,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이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소통이 없다는 것은 단절을 의미한다. 소통이 없는 무리는 더 이상의 발전도, 즐거움도 없다. 그 자체로 끝인 것이다.
실례로, 나의 친정 식구들은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어려서부터 우리집 거실을 채우던 TV가 한몫했다. TV 소리가 늘 가득하고, 어쩌다가 이야기를 하려면 TV를 보는 이의 입장에서는 방해가 되니 "시끄러워!"라는 말이 거실을 채웠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꾹 참게 되고 점점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대화 없는 우리 집만의 문화가 조성되다 보니, 어른이 되어 함께 모여도 집안이 썩 시끄럽지는 않다.
소통이 자유로운 집
시댁 식구들은 소통이 원활하다. 명절이나 생신 때 다 같이 모이면 TV를 찾는 이들은 아이들 혹은 아버님이다. 그것도 특정 프로그램 - 어린이용 만화, 혹은 저녁 뉴스 -을 본다. 평소 대화가 잦다 보니 함께 모이면 텔레비전 켤 생각을 안 한다. 서로의 고민에 대해 머리를 열심히 맞대어 생각해 주며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한다. 감정 표현이 자유로우면서도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존중해 주게 된다. 이야기 자체만으로 웃음꽃이 핀다. 심심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
현재 '우리 집'의 소통 상태는?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다. '나-부모님'이 함께한 가정에서 대화에 대한 결핍이 주는 악영향을 몸소 느낀 나는, '나-남편-아이들' 가정에서 끊임없는 소통을 시도한다. 물론 내게 쉽지 않은 부분이다. 평소 '대화'라는 것을 해본 적이 별로 없기에, 내 생각이나 기분, 견해 등을 말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 하지만, 자녀교육이나 사회생활을 하는데 이만한 게 없다는 것을 알기에 끊임없는 대화, 소통을 하기 위해 늘 노력한다.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엄마, 가족이 함께 매일 이야기하니 참 좋아. 친구에게 말 못 할 것도 다 이야기할 수 있어."
그만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편하다는 뜻이다. 단순히 몸만 편한 게 아니라, 마음과 정서 상태마저 교류가 되는 사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어려서 어떤 가정문화를 이루어가며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자양분이 될지 독이 될지는 그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훗날 어떤 계기로 깨달음을 느껴 성장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여전히 닫힌 생각과 마음으로 닫힌 삶을 살아가는 안타까운 이들도 있다. 이왕이면 어려서부터 소통하는 문화를 누리도록 부모의 애씀이, 혹은 이미 장성한 어른이 되었다면 이제라도 소통이 주는 유익을 몸소 느끼며 발전하는 나와 사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