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교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함께 모여 차마시며 이야기를 나눴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다과를 먹으며 책을 보기도 하고, 뛰어놀기도 했습니다.
모임 리더분의 말씀에 따라 각자 진지하게 생각을 말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난 그거 싫다니까~”
갑자기 2호 아이의 목소리가 제 귀에 꽂힙니다. 나눔 하는 이 시간 동안, 저는 분명 차가 놓인 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는데, 제 귀와 마음은 온통 아이 앞에 가 있습니다.
두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니, 댕댕이가 2호 아이에게 그림 색칠하기 놀이를 하자고 하는데, 저희 아들(2호)녀석이 싫다고 하니까 기분이 언짢았나봅니다.
“너 그림 나랑 안 그리면 안 놀아준다!”
자신의 욕구대로 움직이지 않는 아이에게 안 놀아준다며 “너랑 안 논다!”, “네 엄마 몇 살이야? 아빠는?”하며 자신의 부모 나이가 많으니 자기가 이겼다며 속을 들끓어오릅니다. 점점 제 마음 속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듯 불편해집니다.
이때 부모가 개입하면 아이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해버림과 같기에 못 들은 척, 제 할 일에 집중합니다. 잠시 후 2호 아이가 말합니다.
“난 몸으로 뛰어놀고 싶어. 앉아서 그림 그리고 싶지 않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댕댕이는 “야! 너 이거 정말 안 해?!”, ”야!”, “야!!”라고 소리를 지릅니다. 하지만, 2호 아이의 진득한 설득으로 두 아이는 다시 술래잡기, 얼음땡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곧이어, 어른들의 모임도 끝났습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시환아, 아까 너 댕댕이랑 불편해 보이던데, 괜찮아?”
“그럼! 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정도였어.”
아이가 대견해 보이는 순간입니다. 역시, 참고 기다리길 잘했습니다. 아이는 생각보다 크고 강합니다. 부모가 개입하지 않고 기다려주었더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스스로 갈등을 원만히 풀어냅니다.
저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정서의 엄마이기에, 아이 일에 마음이 기쁘기도 하고 때론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노력은 합니다. 아이의 감정에 엄마의 감정이 투영하지 않도록, 아이 문제가 엄마 문제가 되지 않도록, 아이가 성장할 기회가 있으면 내 마음을 꾹꾹 눌러가며 내버려 두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설탕 한 스푼만큼 성장한 2호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분명 가슴속에 시뻘건 불덩이가 들어앉은 기분이었는데 아이의 한 마디에, 얼음 듬뿍 넣은 오렌지 에이드를 마신 듯 시원해집니다.
내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정도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