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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시시 Dec 16. 2022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배려

나는야 소시민

학교에 지각할 것 같으면 달리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전력질주를, 마치 100미터 달리기라도 하듯 뛰었다. 가방끈이 어깨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양 손으로 가방끈 중간을 꽉 잡고 심호흡을 깊게 들이마신 뒤 다리에 온 힘을 실어 달렸다. 얼마 가지 않아 이내 숨은 넘어가고 곧 쓰러질 것처럼 세상이 하얗게 보이지만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었다. 다들 그렇게 뛰니까. 교문 앞에서 선도부가 지키고 서 있으니까.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바쁘게 움직이는 걸. 초등학교 때야, 느긋하게 걸어갔다. 딱히 지각을 하지 않았다. 실컷 논 만큼 실컷 잠을 잤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공부의 질이야 어찌됐든,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늘 피곤했다. 그래서 아침마다 지각 안 하고 학교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의 모든 일상이 느려졌다. 내 마음은 급하지만, 급할수록 아이를 보채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아이를 많이 기다려주기도 하고 충분한 관찰시간도 줬다. 좁은 통로를 갈 때면 뒤에 불편한 기색으로 걷던 아저씨를 향해 “먼저 지나가세요.”라고 양보도 하고, 계산대 앞 카트에 수북이 쌓인 아주머니를 향해 “먼저 계산하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이기도 했으나, 내 아이를 위한 배려이기도 했다. 아이 엄마가 된 만큼 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이를 재촉하지 않아 나도 내 아이도 웃음지을 일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조금 커서, 두 아이가 학교를 다니고 막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내 걸음이 다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아침에 보내고 나면 재택근무가 시작된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는지, 일한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아이들이 집에 오고, 나는 막내를 데리러갈 시간이 된다. 내 발걸음은 바빠진다. 언제 내게 여유가 있었냐는듯, 종종걸음으로 아이를 향한다. 그러나 멈칫하게 되는 계기가 있으니 ‘계단 위의 어르신’을 보고난 이후부터다.



결혼 전이었으면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을 행동이다. 이는 긴 육아기간을 통해 기다림의 미학을 깨닫게되면서 인지하게 되었다. 집 밖을 뛰어나가다가 계단 아래, 느릿느릿 걷는 어르신을 보고 아차 싶었다. 이 분도 한 때는 젊은 시절이 있었을텐데, 이렇게 바람을 남기며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며 부러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분도 과거에 근육이 힘이 넘쳐나고 튼튼한 뼈를 갖고 있었기에.. ‘몸사린다’는 말을 개의치 않게 살아오신 분들일텐데(물론, 그 분들이 젊어서는 중노동을 경험한 세대일테지만..).

또한, 나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그 분은 행여나 의도치않은 사고를 겪게될까 약간의 긴장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 때부터였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계시면 아무리 급해도, 최소한 그 분 앞에서 뛰어가지는 않는다. 거리를 두고 이동하거나 보통 걸음으로 느긋하게 걸을 지언정, 달리지는 않는다. 이런 내 마음을 그 분들이 헤아리시든 아니든, 이게 어르신들을 위한 나만의 소시민적 삶의 모습이고 배려하는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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