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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시시 Jun 20. 2024

30분, 나를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시간

독립서점 방문기

얼마전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남편은 일정상 아이들을 돌보고, 나 홀로 식장을 찾았다. 예식 후 내게 주어진 시간은 30분.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일과 육아라는 일상 속에 내게 주어진 나만의 시간은 늘 0이기에 30분은 ‘고작’이 아니다. 1분이 서른 개나 들어간 제법 덩어리가 큰 시간이다. 고민없이 바로 검색했다.

‘선릉역 근처 서점.’

매일 책을 읽으면서도 여지껏 독립서점, 북카페에 가본 적이 없다. 마침, 선릉역 가까운 곳에 ‘최인아책방’이 있었다. 이동시간을 뺏기지 않아도 되어 부담도 없다.

수많은 네모난 건물 중 대체 어디쯤 자리하고 있을지를 생각하며 두리번 거릴 때, 길가에 어울리지 않는 대문 하나를 발견했다. 마치 저 문을 열고 가면 비밀의 화원이라도 있을 것 같았다. 문틈 사이로 ‘최인아책방’이라고 적힌 팻말이 나를 반겼다. 건물 사이에 좁지 않은 골목길과 햇빛 머금은 나무의 조화는 운치미도 느낄 수 있었다.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 출입문을 조심스레 밀었다. 커다란 샹들리에, 곁가지 조명, 한 쪽 벽면을 가득채운 거울은 한없이 나를 환영해주었다. 계단을 4칸 오르자 마음이 벅차올랐다. 갓난쟁이 아가를 보는 엄마의 햇빛 머금은 미소처럼 내 자신을 향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미소의 시작은 책사랑 때문일까 혼자만의 시간을 즐겨서일까.

두 발은 엘리베이터를 거부했다. 벽면의 장식이 내게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했기 때문이다. 한 칸 한 칸 높아질수록 마음이 더욱 싱숭생숭해지는 그 곳. 책방문 앞에 내가 서 있다.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고 들어섰다. 2층 복층형 구조로 공간이 넓게 트여있어 더 많은 책을 꽂아둘 수 있었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 쌓여있고 한 가운데에는 진열대가 자리를 잡았다.

출입구 앞쪽에는 독립서점에서만 볼 수 있는 독립 출판물이 모여있기도 했고, 대형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책들을 모아 두기도 했다. 인상깊은 것은 책진열 방식이다. '추천자들이 꼽은 내 인생책', '무슨 책부터 읽어야할지 고민은 그대에게', '고민이 깊어지는 마흔 살 들에게' 처럼 특정 주제별로 구분했다. 그에 해당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뺏기 좋은 배열이다. 다른 한쪽 벽면에는 책의 중간에 메모카드가 꽂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을 기록해 두었는데, 자필인지 인쇄물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다. 타인의 흔적을 공유하는 기분이 꽤 신선할 뿐이었다.

벽면 책들 모퉁이 사이로 미닫이 문이 보였다. 그 틈새로 책모임하는 공간이 보였다.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 책모임하고 싶다. 책들이 있는 공간과 책방 분위기가 좋아서다. 대관료가 비싼 게 흠이긴 하지만.

위로는 복층형 구조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마음 같아서는 한 손에는 읽을 책, 다른 한 손에는 시원한 커피를 들고 올라가고 싶었다. 내게 주어진 30분을 알차게 쓰려면 앉을 시간까지는 없었다. 결국, 그곳에 있는 책을 보고 탐색하고 관조하며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책들을 살펴보았다. 오랜 망설임 끝에, 화가로 변신했다는 박신양의 책을 골라들었다. 인쇄 사인이 아닌 친필 사인은 덤이다. 영화배우가 아닌 화가와 작가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책방을 뒤로하는 아쉬움을 달래려, 책방 스탬프를 찍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혼자 즐긴 이 30분은 나를 빛나게  한다. 책방에 다녀온지 한 달이 지났지만, 나를 반기던 책방과 그에 반응하던 내 몸의 세포들이 여전히 반응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박신양의 책 한 권, 내지에 찍힌 도장과 싸인. 얼마나 의미있는 30분을 보냈는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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