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MBTI는 INFP입니다. 소문자(i)가 아닌 대문자(I)요. 사람들과 웃고 시간을 보내고나면 허무함을 느끼거나 에너지가 소모되더라고요. 사람들과 ‘함께있기’ 보다는 ‘혼자’가 편하고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만의 어떤 활동에 ‘집중’할 때 에너지가 응축됨을 느끼는, 저는 전형적인 I입니다. 특히, 독서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면서 그런 현상이 도드라졌습니다. 하지만 I도 I나름이죠. 어려서는 하고 싶은 말도 꾹꾹 삼켰는데, 책을 읽으면서 다른 I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혼자가 편하고 좋지만 자신의 할 말은 하면서 나만의 공간을 지키는 I가 된 거죠.
장미의 계절이라고 불리는 5월, 날 좋은 바로 오늘. 교회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인천에서 예식장까지 무려 1시간 30분이 걸리는 거리였어요. 사람들과 섞이기 싫은 저는 고민하다가, 초행길을 헤매고 싶지 않아 교회차를 타기로 했어요. 출발 시간이 다가와,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교회차가 보이는 전방 50m 지점.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교회차는 크니까(전세버스) ‘2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편하게 책이나 봐야지.’하는 생각으로 갔는데, 교회 앞에는 스타랙스가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변에는 예를 갖춰 정장을 입은 교회 어르신들이 짝을 이루고 있었고요. 찰나의 순간, 고민했습니다.
‘어쩌지? 난 지금 이 책을 꼭 읽어야겠는데 저 스타랙스에 타면 사람들과 불편하게 섞여 있어야 해. 잘 알지도 못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내 이야기도 예의상 해야겠지? 영혼없는 인형처럼 앉아서 갈 수도 있겠지? 다들 즐겁게 이야기하는 중에 내가 혼자 책을 본다면 과연 즐겁게 독서할 수 있을까? 목사님께 교회차를 이용할거라고 말씀드려뒀는데 어쩌지?’
책 좋아하는 I인 제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줄행랑이었습니다. 뒤돌아볼새 없이 제 발은 교회를 뒤로한 채 전철역을 향해 있었고 손은 이미 핸드폰 버튼을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죠, “목사님, 죄송하지만 전철타고 가겠습니다. 이따 뵐게요.”라고 말입니다.
교회차를 타고 이동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제 시간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매일 일, 육아, 집안일에 허덕이는 제게, 이동하는 3시간은 로또와도 같았거든요. 이 시간을 힘없이 흔들리는 푸딩처럼 내버려둘 수는 없었어요. 책을 읽고 싶던 저는 어떻게든 제 시간을 확보해야만 했습니다. 결국, 제 품에 낀 김종원의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는 결혼식 오가는 동안 푹 빠져 읽을 수 있었어요. 예전 같았으면 할 말을 못해서 불편하게 차를 이용했을텐데, 독서하고싶은 마음 하나만으로제 시간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매일 사무실과 집만 오가던 집순이가 지하철 나들이 하느라 다리는 한없이 무겁지만, 머리와 가슴에는 단단한 기쁨이 꽉 찼습니다. 이제 맡겨진 집안일을 마친 후, 책의 내용을 천천히 곱씹으며 다시 책의 세계에 푹 빠질 시간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