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 사랑이 이야기
앞선 글들에서 나는 아이를 키우며 선택한 '기다림'을 말했다. 오늘은 그 기다림이 가장 오래 쌓인 아이, 우리 집 1호인 사랑이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두 어른이 살고 있는 집에 어느 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가 있는 곳에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한 명이기에 아이의 탐색을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었고, 책도 충분히 읽어줄 수 있었다.
책을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 번은 이민용 트렁크 가득 친척에게서 책을 받아온 적이 있다. 늦은 시간이라 혹시라도 아이가 책을 볼까봐 일부러 트렁크를 열지 않았다. 세종대왕의 아버지 태종도 아니고 책을 숨겨야 하는 상황이라니.
밤에 화장실 다녀온다던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호기심에 열어본 트렁크 속 책에 푹 빠져있었다.
7살 에는 프랑스 실화 소설 『벽장 속의 아이』를 읽기도 했다. 내게 몇 권 없던 책 중에 하나인데, 하필이면 아동학대를 다룬 책을 읽다니. 동화책이 아니었기에 내 책을 아무렇게나 두어도 신경 쓰지 않은 탓이다.
나중에 물어보니, 책장에 그 책이 있어서 그냥 읽었다고 한다. 이후에는 초등학교 1년에 그리스로마 신화에 빠져 있었고, 2학년에는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시공주니어 출판사)를 여러 번 반복해 읽었다.
책을 많이 읽어서일까, 아이는 늘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 덕에 동생들은 1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정말 좋아했다. 이야기보따리인 만큼, 창의적인 놀이가 랜덤박스처럼 나왔다. 예체능을 제외하고 학원을 다닌 적 없이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아이는 큰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에 적응했다. 선행을 당연히 여기는 수업 분위기라는 이야기를, 다른 엄마들을 통해 들었다. 아이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그렇게 중학생활을 마친 겨울방학, 아이 생활은 한없이 느슨해졌다. 잠자는 시간이 평소와 같든 다르든 기상 시간은 늘 점심 무렵이었다. 막내가 언니는 왜 맨날 지금 일어나냐고 물으면 나는 "냅두자."라고 답했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엄마, 나 진짜 안 움직이긴 했나 봐.
아까 계단 올라가는데 숨차 죽는 줄 알았어!"
1호의 말이다. 몇 개 되지 않은 낮은 계단을 올랐는데 체력의 한계를 느꼈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의 하루는 식탁에서 시작해서 식탁에서 끝난다. 방 문 닫고 걸어 잠그는 게 아니라, 식탁이 아이의 방이다. 밥을 먹고 그림을 그리고 공부도 하고 패드도 한다. 물을 잘 마시지 않아서 화장실 가는 모습은 아침저녁 말고는 보기 힘들었다.
역시, 잔소리보다는 내버려 두는 게 강력하다. 스스로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다음 날부터 집 안 생활을 벗어나기로 다짐했으니. 그날 이후, 아이는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선행이 난무하는 시대에, 이 아이는 멈춤과 기다림을 몸으로 습득했다. 살면서 마주할 수많은 일 앞에서 아마도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돌아가도 괜찮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아이 옆을 지키는 엄마의 자리도 늘 단단하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