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입은 낄끼빠빠
지금까지 세 아이들의 시간을 거슬러왔다. 첫 홀로서기가 쉽지 않은 초등 1학년, 자신의 시간을 즐기며 움직이는 초등 4학년, 한없이 늘어지며 방학을 흘려보내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의 시간 속에 엄마의 개입은 없다.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아이 스스로 성공과 실패의 반복 속에서 배우는 기회를 뺏고 싶지 않아서다.
고독하게 키우자
나는 내가 연약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누군가의 말에 흔들려 아이를 비교 대상으로 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엄마들과 말을 섞는 일에 조심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은 참고하되 기준은 삼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의 눈빛과 말투, 마음과 행동을 보았고, 아이 고유의 빛깔을 보고 읽으려 애썼다. 아이들은 학원에 가지 않더라도 저마다 어느 분야에서 제법 "잘한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라고 있다. 물론 쉽지 않다. 원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심 신경이 쓰이고 불안한 건 보편적인 사람 심리니까. 그럴 때마다 중심을 잡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내 아이와 그 집 아이는 다르니까
김연아 엄마가 김연아 학과를 전공했듯, 나는 세 아이를 복수전공하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 내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책임지는 사람이다. 다른 과목과 비교하지 않고, 내 전공과목을 파며 한눈팔지 않는 게 최선이다. 아이 스스로 무언가 탐닉할 시간을 주면 전공이 쉬워진다.
때때로, 아이들에게 엄마의 입김이 필요할 때가 있다. 큰 힘은 필요하지 않다. 방향성을 제시하고 판만 깔아주면 된다. 낄 땐 끼고 빠질 땐 빠지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최선의 개입이다.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바탕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간헐적으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번 방학에는 대놓고 판을 깔았지만 말이다. 그 시작은 집안일이다. 아이들의 반발은 생각보다 거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