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그리고 부엌
설 명절이라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였다. 계속 밥만 하느라 지친 딸(시누이)들이 ‘외식하자.’고 말했다. 어머님은 거침없이 말씀하셨다.
“집에 여자가 넷인데 밥을 왜 사 먹어!”
어머님은 육남매 도시락을 바지런히 챙기셨다. 한 사람당 두 개씩이었다. 남은 반찬이 김치 한 가닥이라도 있으면 감사히 드셨다. 남편의 셔츠깃이 구겨지지않게 새벽에 일어나 다림질하고 구두를 광이 나도록 닦으셨다. 시어머님 봉양도 어머님 차지였다. 집안 살림만 했으면 다행이었을까, 없는 살림 늘려보겠다고 날마다 부업거리를 찾으셨다. 그 덕에 육남매는 학교공부도 잘 해서 자신의 자리를 잘 찾아갔다. 아버님은 별 걱정없이 직장생활 하셨다. 가정은 늘 안정적이었다.
명절의 부엌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공간인가보다. 답답함이 차오른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게 당연한 시대를 사셨으니까.
여자는 가족을 위해 참고 희생하는 존재, 자신의 것을
주장하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당신이었다. 그래서 어머님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켠이 아리다. 삶을 통해 정립한 여자라는 존재안에 갇혀서 그게 당연하다 여기시는 그 분의 삶, 노년에 남은 거라곤 상한 몸과 지병투성이인 당신이. 이제라도 조금 편안하게 사셨으면 좋으련만.
엄마! 여자가 넷이면 뭐?
여자만 밥해?
언니(시누)들이 웃으면서 받아쳤다. 나는 여전히 함구했지만 덕분에 막힌 숨통이 트이면서 소리내어 웃을
수 있었다. 시댁에서 친정으로 가는 차 안. 운전하는 남편에게 졸지 말라고 커피를 사줬다.
“왜 엄마아빠만 마셔? 우리도 마셔야지.”
아이들의 불만 섞인 항의가 내심 반갑다. 내가 삼키는 말들을 우리 아이들은 또박또박 말한다. 때론 침묵하면서 때론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아이들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이야기
지난 글에 이어 집안일에 대한 글을 발행하려했는데 마침 명절이더라고요. 그래서 명절에 느낀 이야기를 아이들과 연관지어 올렸습니다.
다음 회차에서 낄끼빠빠(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육아, 그 첫번째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