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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라의 일기장 Nov 06. 2024

내가 춤을 멈추는 날

얼마 전부터 몸이 아팠다. 말로만 듣던 갱년기 증상이었다. 몸에 힘이 없고 축 늘어지고 마음도 괜히 눅눅해졌다. 그러더니 그렇게 좋아하는 춤마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춤이 싫어지다니! 나 정말 잘못된 거 아닐까?’ 변한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랄 지경이었다. 내가 춤이 싫어지는 날이 올 줄이야. 나이를 먹으면 언젠가 닥칠 일이라고 가끔 생각했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빨리 그날이 왔다. 기운이 없어 오전 시간에는 침대에서만 보내기를 몇 달. 어느 날 문득 할머니가 떠올랐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는 극 ‘E’였다.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동네 참견 다 하시던 우리 할머니가 쇠약해질 데로 쇠약해져 요양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활발한 성격인 할머니는 병원 생활을 답답해하시며 자식들에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졸랐다. 할머니를 만나러 병원에 온 내게도 할머니는 늘 집으로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곤 했었는데 치매가 심한 할머니 혼자 생활할 수 없는 걸 아는 나는 그런 할머니가 안쓰럽기만 했다. 하루는 어린아이처럼 보채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집에 돌아가서 뭐 하시려고요?”

“으응! 집에 돌아가면 말이지...”

할머니는 상상만 해도 즐거운 듯 지긋이 눈감고 미소를 떠올렸다.

“음... 시장에 갈 거다. 시장에서 호박이랑 감자 사서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여 먹을 거야.”

“된장찌개 끓인다고요?”

“그래.”

할머니는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집에 가서 하고 싶은 일이 된장찌개 끓여 먹는 일이라니. 무언가 거창한 걸 기대했던 나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답에 놀랐다. 된장찌개를 끓이고 시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것은 너무 뻔하고 지루한 일상이 아니던가. 안타깝게도 할머니는 바람 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원하는 대로 된장찌개를 끓여 보지 못한 채 돌아가셨어도 그날 행복해하던 할머니 얼굴은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새겨있다.      


그날 할머니의 행복한 미소는 내게 말해주는 듯했다. 내가 누리는 작은 일상이 사라지는 날이 온다고. 영원한 건 없다고 말이다. 그날 할머니와 추억을 되새기다 보니 계속 누워 있을 수 없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벗어나 엉망인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지긋지긋한 집안일’이 감사해진다. 잘 넘어가지 않는 밥술이지만 넉넉히 먹고 멈췄던 춤 수업에 등록했다. ‘그래,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춤을 추겠다고 책에도 버젓이 써놨는데 여기서 멈출 수 없지.’[나의 춤바람 연대기에서]


나는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도 할머니처럼 사소한 일상이 기적이 되는 날, 춤을 멈추는 날이 언젠가 올 것이다. 작은 하루를 그리워하고 숨을 쉬는 것이 춤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는 날 말이다. 흐르는 시간을 잡을 순 없으니 이제부터라도 남은 시간을 밀도 있게 꼭꼭 눌러서 쓰련다. 후회하고 미련이 남지 않도록 하루를 기억하고 즐기리라. 설령 모든 순간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고통스러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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