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에 초연해지기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오던 4월 어느 날.
열흘을 기다린 약속이 궂은 날씨에 무산될까 초조해져 손에 쥔 책의 다음 문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시각, 만나기로 한 사람은 이미 길을 나서서 쉴 새 없이 빗길을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오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아는데도 불현듯 찾아온 불안감에 허우적거리다 거기서 빠져나오기 위해 펜을 들고 이리저리 끼적이기 시작했다.
이미 오고 있는데 혹시 오늘 못 오는 건 아닌지, 출발한 건 맞는지, 오다가 사고가 난 건 아닌지 걱정하는 내 모습을 문득 발견하자, ‘내가 이런 생각을 잠시라도 했다는 것을 그 사람이 알면 퍽이나 좋아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채비를 마치고 나에게 1분 1초 다가오고 있는 많은 기회들도,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 오다가도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을 것이다.
“나 이제 거의 다 왔어!”
반가운 문자를 확인하고 앉아있던 와인 카페의 자리를 정리하며 생각했다.
‘기회도 나에게 미리 연락을 주면 참 좋을 텐데.’
기다림에 조금 더 초연해져야겠다. 기회에게는 휴대폰이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