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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Oct 19. 2024

영원한 이별은 이토록 예고 없이

3장 - 현실 속에서 나의 세계를 지키는 법


 새하얀 이팝나무꽃과 아카시아의 은은한 향기가 거리에 가득하던 화창한 5월 어느 날. 외출 준비를 하던 도중, 첫째 고양이 모찌의 ‘하악’ 소리와 함께 둘째 고양이 카이의 ‘켁, 커헉’ 소리가 들려 거실로 나갔다. 식탁 앞에 ‘ㄷ’자로 뻣뻣하게 쓰러진 카이의 모습에 놀라 달려가 보니, 잔뜩 커진 동공은 한치의 움직임이 없었고 몸이 엿가락같이 늘어져 제대로 안아지지 않았다. 

 급하게 옷을 마저 입고, 택시를 잡고, 창고에서 이동장을 꺼내 카이를 누였다. 마음은 다급한데 손이 그만큼 따라오지 않아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듯 모든 상황이 슬로우 모션으로 흘렀다.

 다행히 몇 주 전 집 근처 새로운 마트를 발견하면서 유심히 봐 둔 24시 응급센터가 생각나 4분 만에 쏜살같이 병원에 도착했다. 택시에서 미리 전화해 두어 의료진들이 다급히 마중 나오셨고, 바로 응급 처치에 들어갔다.

 영겁 같은 찰나의 시간, 엄마와 함께 대기실에 앉아 기적을 간절히 바랐다. 급하게 연락을 받은 동생도 이내 병원에 도착하여 함께 경과를 지켜볼 수 있었다.

 의료진의 호출로 응급실 안에서 마주한 카이의 조그만 네 발에는 약물 투여를 위한 호스와 환자 모니터 연결선이 꽂혀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이 흉부를 압박하면 모니터에 심박이 잡혔지만, 손을 떼면 모든 선이 멈추었다. 더 이상의 약물 투여는 의미가 없는 상황.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렇게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찾아왔다. CT를 찍어 보아도 장기나 기도, 어디에도 명확히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혈전이나 바이러스로 인한 쇼크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었다.

 평소 지병도 없었고, 뭘 잘못 먹은 것도 아닌데 사람으로 치면 청년에 불과한 5살 카이가 그렇게 떠났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원인 불명의 급성 쇼크로 인한 사망. 그게 우리가 알 수 있는 전부였다.

 평소와 똑같이 아침에는 내 배 위에 누워 기분 좋게 골골거리고, 침대 머리맡에서 그루밍을 하고, 모찌와 우다다 거실을 뛰어다니다가 단 몇 초 만에 예고 없이 떠난 카이. 이 황망한 이별 앞에, 병원은 곧 울음바다가 되었다. 동생은 일 때문에 멀리 나가 있는 아빠에게, 나는 카이를 만나게 해 준 구조자분에게 카이의 비보를 전했다. 


 길고양이였던 엄마 뱃속에서 8형제들과 함께 구조된 카이는 형제 중에서도 서열이 가장 낮은 소심한 쫄보였고, 까맣거나 고등어 색깔을 띤 형제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밝은 노란 털을 지닌 아이였다. 2개월령에 우리 집에 입양되어 무럭무럭 자라 덩치는 일반 고양이들의 두 배였지만 성격이 워낙 온순하여 몸집이 크고 순한 견종, 골든리트리버를 떠올리게 했다. 사람을 너무 좋아하여 매일매일 집사들에게 다가와 안기고, 끊임없이 말을 걸던 수다쟁이 카이는 고요하던 우리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말썽 한번 피우지 않고, 음식도 가리지 않고, 강아지처럼 살갑게 출퇴근 인사도 건네던 막내는 가족들이 걱정할 겨를도 없이, 짧은 소풍 같은 삶을 홀연히 마쳤다.

 구조자님은 내가 전한 갑작스러운 비보에 함께 슬퍼하며, 댁에 남아 있던 카이의 형제 중 까만 털을 지닌 까망이도 올 초 급성 신부전으로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주셨다. 거대 고양이 8형제 중 가장 먼저 떠난 까망이가 고양이 별에서 카이를 마중 나와 줄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착하고 순한 쫄보, 카이가 초행길에 헤맬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병원에서 연결해 준 반려동물 장례식장 추모실에 도착하여, 그 작은 몸에 헌화하고, 인연의 붉은 실을 매어 주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시간. 아빠를 엄마 고양이처럼 따르던 카이를 배웅하러 부랴부랴 도착한 아빠는,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곤히 자는 듯 누워 있던 카이를 보고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빠 품에 마지막으로 안긴 카이의 모습은 그저 살아 있는 듯했다. 

 보드랍고 고운 털을 쓰다듬으며 마지막 체온을 나누고, 한 줌 재가 된 카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5월의 신록 위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아카시아 향이 따뜻하게 카이를 배웅해 주었다.

 먹성 좋고 낙천적인 친화력 대장 카이가 고양이 별에서도 맛난 것들 많이 먹고, 친구들도 많이 사귀며 행복하게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적막이 흐르는 집 안 구석구석 남아 있는 카이의 흔적을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다시 그 하얗고 몽실몽실한 배를 만질 수 없지만, 우리 집에 온 순간부터 언제나 웃음과 행복만 안겨 주었던 영원한 나의 아기 고양이, 카이의 여행을 응원하려 한다. 즐겁고 행복하고 맛있고 느긋한 기억만 가득 가져갔기를. 언제나 긍정 그 자체였던 그 모습 그대로, 풍족한 고양이 별에서 까망이와 함께 발랄하게 뛰어놀고 있기를.


 영원한 이별은 이토록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걸 늘 가슴에 품고, 날마다 카이가 그랬던 것처럼 긍정하며 살아간다면, 앞으로 헤쳐가지 못할 것이 무엇일까. 무엇이, 그렇게 중요할까. 

 햇살 찬란한 5월에 무엇보다 찬란했던 존재를 떠나보내며, 온갖 세상 잡음이 가득 들어찬 축축하고 비루한 마음을 바짝 말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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