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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Feb 28. 2016

공항으로

서울 #3. 순도 100의 무모함


청아한 아침. 출근길 정체를 피해 꽤 이른 시간  올림픽대로 위를 달리고 있다. 

라디오를 켜자 익숙한 목소리가 경쾌하게 차 안의 침묵을 밀어낸다. 


문득, 생각했다. 혹독했던 계절 내내 카페의 얼음장 같은 적막을 깨뜨려 주던 그 목소리에, 단 한 번이라도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는가를. 손도 바쁜 와중에 마음까지 바쁘게 애쓸 일 없도록 매일의 시작을 도와준 목소리였는데 말이다. 카페를  그만둔 후 이제까지 다시 라디오를 틀 겨를이 없었지만, 앞으로도 한참은 들을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이 작별 인사를 할 때. 나는 곧 긴 휴식에 접어들게 될 내 휴대폰을 집어 들고 몇 자의 감사와 안녕을 실어 보냈다. 여느 때처럼 퀴즈의 정답을 맞히려는 것도, 그 무엇도 아닌 순수한 인사를. 


그런데 여의도를 지나는 순간, 그 목소리가 나를 부르며 살갑게 손을 흔드는 것이었다. 


가게 되어서 얼마나 좋으냐고, 오래 걸린 만큼 잘 할 거라고, 

그곳에서도 종종 소식 달라고,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노라고.   


그래, 미안한 맘 덜어버리려다 또 그렇게 갚지 못할 빚을 지고 말았다.

그의 황송한 배웅을 받으며, 하루 대신 긴 여정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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