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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Jo Feb 18. 2016

휴학, 그것으로 안녕

서울 #1. 항로 선회



2006년 겨울, 3학년을 마치고 공황상태가 찾아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 믿고 해오던 많은 것들이 실은 스스로에게 부여한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눈치 채버렸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는 3년을 보내 놓고도 내가 시각디자인이라는 광범위한 울타리 안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전공영역 중에서는 영상 파트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었지만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까지가 내가 집중할 수 있는 한계선이었다. 글은 늘 쓰던 것이고 할 말도 많지만 그것들을 표현할 방법, 즉 매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기도 애매했고 그렇다고 그대로 계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뾰족한 답도 대안도 나오지 않던 상황 속에서 나는 내가 속한 모든 환경적, 사회적 범주로부터 나를 격리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 자신을 시험하며 관찰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외부적 동기부여가 철저히 배제된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과연 나를 독립체로 존재시키기 위해 무엇을 하게 될 것인가.


휴학 후 수입 가공식품판매, 건축설계사 사무보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어디로든 떠나 보자고 선택한 것이 호주 워킹홀리데이였다. 어학원을 다닐 심적, 물질적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영어쯤이야 얼마든지 닥치는 대로 익힐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어학연수는 애초부터 고려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일단 시급한 것은 내가 평생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캠코더와 노트북, 각종 그림도구를 챙기며, 내가 끝까지 어떤 작업에 매달리게 될 것인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이후 내 전공에 안녕을 고하게 된 발단이 되었다. 아마도 안녕이라기보다는, 항로를 변경했다는 말이 적절할 것이다. 도달하고자 했던 목적지가 바뀐 것은 아니므로.  


그렇게 2007년 10월. 나는 먼 바다로 뱃머리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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