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y Jo Feb 18. 2016

나의 도시, 멜번

첫출항 - 호주의 워홀러


 

서울 태생인 내가 난생처음으로 완전히 혼자가 된 곳, 멜번. 


원체 서울이 고향답지 못한 대도시이다 보니 이 장난감 같은 도시는 금세 내게 제2의 고향이 되어주었다. 준비단계에서 다른 많은 도시들을 제쳐두고 멜번을 선택했던 이유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머릿속에 기록되었던 그 알량한 정보 뭉치들은 이 땅을 밟음과 동시에 인식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강렬한 햇빛으로 선명하게 살아난 색들이 하늘과 건물들, 거리와 사람들을 휘감으며 일렁였다. 호주에 가니 입을 옷이 그렇게도 없더란 푸념 일색이던 사람들에게 돌연 전화를 걸어 따지고 싶을 만큼, 내 취향에는 꼭 맞는 오색찬란한 옷들 천지였다. 대체 무슨 연고로 추가 요금까지 내고 꾸역꾸역 옷가지들을 쑤셔왔던가!  


빌딩 숲이 훤히 보이는 작은 공원에도 다홍빛, 연둣빛 고운 야생 앵무새들이 휘 날아다니는 광경 앞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트램으로 20분이면 찬란한 빛을 머금은 세인트 킬다 비치의 푸른 파도를, 늑장 걸음으로 10분이면 작은 항구 도클랜드에 흩뿌려진 총총한 선박의 불빛들을 마주하게 되는 이 말도 안 되는 도시. 멜번은 도시와 자연이 질리지 않을 황금비율로 완벽하게 버무려진 곳이었다. 그런 땅이 나 몰래 멀고 먼 남반구에서 버젓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에 일말의 배신감마저 밀려왔다.      


나는 곧바로 온라인 카페를 통해 미리 찾아놓은 셰어하우스에 들어갔고 초기 정착 후에는 액세서리 판매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대형 쇼핑센터 안에 매대와 물건을 세팅하고 손님들에게 착용을 권유하며 판매하는 일이었다. 파견근무 형식이었기 때문에 근무지가 늘 바뀌었고 다소 거리가 먼 교외로 배정이 나면 멜번의 상징, 노란 플린더스 역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일하는 날이 많지는 않아도 시급이 높아 생활은 얼추 꾸려나갈 수 있었다.   


41도의 뙤약볕 아래 맞이한 그 해 크리스마스 날도 나는 어느 쇼핑센터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Buy 1 get 1 free 행사를 진행하고 있었다당일까지도 선물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과 복싱데이 (Boxing day: 매해 크리스마스 직후 벌어지는 대폭 세일, 즉 쇼핑전쟁의 서막인 26일) 전야에 탐색전을 벌이러 나온 인파들로 북적거렸다.   


출퇴근길에 늘 걷던 스완스톤 스트릿은 버스킹을 하는 아티스트들로 곳곳마다 북적거렸다. 싱가포르에서 10대 가수에 들었다던 그룹 출신의 실력파 보컬부터, 별 볼일 없는 소품을 만들어 파는 사람까지, 그 수준은 천차만별이었다. 한 번은 보도블록 위에 분필로 대형 작업을 하는 호주인 화가에게 물어 거리 전시 절차를 알아보았다. 멜번 시청에서 매주 화요일에 오디션을 진행하는데 거기에 전시나 공연 내용을 가져가면 심사 후 허가증을 내준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나는 몇 달간 끼적거리던 그림들을 가지고 멜번 시청으로 향했다. 갖가지 치장을 한 재주꾼들과 악기를 든 사람들이 일렬로 대기하고 있었다. 공연이 사람들을 모으기엔 더 효과적이지만 당장 장비도 없는데다 알아두었던 밴드 보컬이 잠시 자리를 비우면 끼어서 한 두 곡 부를 수 있었기 때문에 오디션은 전시부문으로 신청했다. 비자 기간과 거주지, 작업내용에 대한 인터뷰를 간단히 가진 후 작품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디션은 끝났다. 얼마 뒤 심사결과 통보와 함께 허가증을 보내주겠다는 메일이 왔고, 정확히 3주 후 멜번 시의회 소인으로 밀봉된 봉투가 도착했다. 그런데 열어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의 사진이 내 이름 옆에 프린트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Easy Going’한 오지 (Aussie 호주인 혹은 호주의) 문화를 뼛속 깊이 체험할 수 있었던 작은 사건이었다. 제대로 된 사진이 박힌 허가증을 받기까지 다시 몇 주를 보내고서야 나는 버스킹을 시작할 수 있었다.   


혈투를 대비한 입시 그림도, 보여주기 위한 학교 과제도 아닌, 무방비 상태의 ‘나’를 그리게 된 곳이 바로 멜번이라는 도시였다. 내가 오롯이 선 풍경과, 내 안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반응들, 그 중첩과 번짐을 끝없이 토해낼 수 있었던 나의 소중한 무대였다.  



나의 소중한 첫 무대, 멜번


매거진의 이전글 휴학, 그것으로 안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