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의 아닌 스케쥴, 코레안 무비 데이.
1회차 상영, 그리고 쓰레기.
아침 일찍 센텀에 도착해서 9시에 바로 시작하는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를 급하게 들어갔다. 이제 영화제의 2일차에 해당하는 날짜, 그리고 그 날의 첫 상영 영화. (부산 영화제는 오전 9시 상영 영화가 당일 제일 빨리 시작하는 작품이다.) 예매권에 적힌 지정된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좌석의 컵홀더에 쓰레기가 있다. 어제 마지막 상영 정보가 찍혀 있는 찢어진 티켓 하나와 돌돌 말린 빨대, 그리고 뭉쳐진 휴지 하나.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영화 상영 시간 사이라면 - 영화제는 관객이 퇴장하고 입장하는 사이 시간 간격이 상당히 좁은 편이고 자원봉사자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음을 고려하면 -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첫 상영 시간의 영화관 컨디션이 이렇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특히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큰 영화제 중 하나이며, 많은 외국인 관람객들이 찾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영화제의 기간 동안 자원봉사자 인원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적어도 첫 상영 시간의 영화관 컨디션은 깨끗-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리가 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물론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에게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 쓰레기는 정리를 하지 못한 자원봉사자 및 영화제 관계 스태프들의 문제이기 전에, 그 자리를 이용하고 떠나면서 다음 사람과 영화제의 운영을 배려하지 않은 관객의 에티켓과 태도에 있기 때문이다. 아침 첫 영화를 보러와서 여러모로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영화 <교토에서 온 편지>는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영도를 배경으로 집을 떠나지 못하는 맏이의 마음도 집을 떠났지만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둘째의 마음도, 아직 그런 고민을 할 나이는 아니지만 집을 떠나고 싶어 하는 막내의 마음도, 모두의 마음이 각자의 자리에서 짙게 묻어나고 있었다고나 할까. 영화만큼이나 좋았던 것은 영화가 끝나고 이어진 GV에서 감독이 보여준 답변과 태도였다. 시종일관 조심스러운 태도로 자신이 영화를 연출한 배경과 소재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답변을 이어가는 감독의 모습은 정말 진심을 담아 연출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GV의 기록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놓인 질문에 대한 답변, "저도 이 소재를 선택하면서 조심스러웠던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함부로 다루고 있지는 않은지, 조사가 너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하는 부분에서 말이죠. 실제로 이 병을 앓고 있는 분들에게 상처를 드리게 되지는 않을지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이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기 보다는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마지막으로 되살려주고 선물해주자’라는 의도 아래에서 설정한 것이어서 그저 그동안 제가 고민해 왔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교토에서 온 편지] 리뷰
[교토에서 온 편지] GV
영화 <오픈 더 도어>와 GV
장항준 감독의 신작 <오픈 더 도어>는 형식적인 면에 있어서 올해 영화제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을 줬던 작품이다. 문이라는 대상의 모티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다른 영화에 비해 러닝타임이 짧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모습을 많이 드러냈던 터라 젋은 친구들이 감독을 웃긴 사람으로 보는 시선도 많지만, 아이디어와 이를 구조화하는 면에 있어서는 최고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한가지 특이했던 점은 이 영화를 제작한 프로듀서가 방송인 송은이 씨였다는 사실인데, 실제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는 그의 이름이 떡하니 올라가 있다.
이날 GV 자리에도 함께 참석했던 송은이씨는 자신의 존재가 영화의 메시지를 조금 가리지는 않을까 걱정이라도 하는듯이 자세를 낮추고자 하는 모습이 계속해서 드러났다. 하지만 필드에서의 수많은 경험과 본연의 끼로 뭉친 그 입담은 장항준 감독의 것과 함께 결합해 그 어느 GV보다도 관객들을 웃기는 시간을 선사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장항준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면 180도 돌변한 모습으로 진지하게 설명을 해주곤 했는데, 나는 감독의 그 빠른 스위치 전환이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시종일관 가벼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게를 잡는 것도 아니고. 좌중을 즐겁게 할 줄도 알면서 해야할 때는 자신의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내공.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11월 초 기준으로) 영화제 당시에는 곧 영화가 개봉할 수 있을 것처럼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직 배급 일정이 잡히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이 영화 다시 봐도 좋을 정도로 괜찮은 작품이다.
영화 <오픈 더 도어> 리뷰
영화 <오픈 더 도어> GV
<고속도로 가족>
사실 오늘 언급하지 않은 영화 <소년들>까지, 선택했던 4편의 한국 영화가 모두 인상 깊고 좋아서 딱 하나 선택하기 힘들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그 중에서도 <고속도로 가족>은 별 기대없이 들어갔다가 의외의 큰 수확을 하고 돌아온 작품이었다. 특히, 몇 년만인지 기억도 안날 정도로 오랜만에 연기를 보게 된 정일우 배우와 정극은 처음 보는 듯한 김슬기 배우의 연기가 생각보다 너무 안정적이어서 극을 이끌어가는데 조금도 무리가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일 정도로 좋았다. (라미란 배우는 말할 것도 없지.) 특별한 소재의 선택과 이를 풀어나가는 방식, 짊어지고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모두 잘 맞아 떨어져서 안정적인 모양을 만들 수 있었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영화의 초반부만 떼어다가 단편 영화로 만들었어도 내내 기억에 남았을 정도로 소재가 신선하고 좋아서 더욱 마음에 남았던 것 같다. 물론 볼륨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남는 전형성에 대한 문제는 이 작품이 어쩔 수 없이 안고 가야하는 지점일 것이다.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리뷰
*이 글은 영화제의 하루를 기준으로 작성됩니다. 영화제가 시작되는 날 아침에 작성한 짧은 기록과 일정이 적힌 '행사 일정 글'과 당일의 일정에 따른 '영화 리뷰와 행사의 내용 및 인터뷰 글', 그리고 영화제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기록한 '데일리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