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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준 Dec 04. 2023

[SIFF 2023] 봄 안에서

2023 서울독립영화제 상영작 : 로컬 시네마 1


**이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한 인물을 비추는 화면 하나가 뽀얗게 초점이 나간 채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창문을 뒤로 수업이 조금 일찍 끝난 문학 선생님(이상훈 분)은 학생들에게 시 한 편을 읽어준다. 박목월 시인의 ‘봄비’다. 이제 수업이 끝나기까지 남은 시간은 5분도 되지 않지만, 그의 목소리를 듣는 학생들은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여전히 선생님을 주시하는 프레임의 시선. 여전히 제대로 보이지 않는 선생님의 모습이 마치 꿈결 같기도 하다.


영화 <봄 안에서>는 묘한 구석이 있는 작품이다. 초단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짧은 러닝 타임 속에서 고정된 카메라 한 대의 시선으로 자신이 담고자 하는 설렘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낸다. 이 작품에서 필요한 것은 빼곡한 대사도 번잡한 움직임도 아니다. 그저 화면 위에 놓아둔 몇 가지 장치를 관객들이 제대로 읽어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른함 속에 감춰진 무엇 하나가 단조롭기만 할 법했던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 작품의 정점은 화면 앞에 놓인 인물인 선생님에 의해 이끌어지던 극의 움직임이 화면의 시선에 해당하는 프레임 바깥의 인물로 옮겨가는 순간에 있다. 졸음을 깨우는 듯한 선생님의 행동으로 인해 카메라의 존재가 어떤 인물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의 작은 번뜩임은 수업 종이 울리고 외화면으로부터 치고 들어오는 또 다른 존재(백지훈 분)로 인해 오롯이 추동한다. 계절의 움직임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던 꽃봉오리처럼 영화가 환하게 미소 짓는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읽어주던 시인의 ‘봄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조용히 젖어드는 / 초가(草家) 지붕 아래서 / 왼종일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아마도 이 영화 속, 보이지 않는 이의 마음을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봄 안에서. 흐릿하던 창문 한편에 그간 기다려왔던 선명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낼 때 비로소 잠결의 사랑이 깨어난다.



로컬 시네마 1


이주은 / 한국 / 2023 / 극영화 / 5 Mins

이상훈, 백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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