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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24. 2019

늦게 피는 꽃이 있다

연탄 두 장 값을 손에 쥐어본 사람을 만나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다.

 봄바람이 살랑거린다. 물길 위에 꽃잎 하나를 띄운다. 꽃잎이 흘러가는 것일까, 물이 길을 만들고 나아가는 것일까, 땅의 등고선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꽃잎이 더는 흘러갈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물길이 마지막에 닿는 곳은 어디쯤일까.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더군다나 땅속에서 일어나고 일을 나는 알 수가 없다. 사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바람에 쓰러진 나무, 뿌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풀이 있다. 뿌리를 기대고 자란다. 꽃을 피웠다. 한없이 몸이 가벼워지던 날 봄바람에 취했을 것이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쯤에서 몸을 떨궈야 하는지를 배운 적이 없다. 바람의 속도와 방향을 계산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다. 너의 탓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불시착하는 존재인 것을.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라고 했던가. 추억은 조이고 풀었던 순간을 버무려놓은 것 같다. 세월만큼 헐거워진다. 더는 붙들어 둘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나중에는 그 자리에 무엇이 박혀있었는지도 모르게 될 것이다. 나의 기다림에도 색깔이 있다면 어떤 색일까.  


 ‘그때 연탄집은 부자였을까?’ 


 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 애도 나처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을까. 그날도 연탄집 아이가 따라 나왔다. 아저씨는 옷이며, 얼굴이며 검정을 묻히고 있었지만, 나는 그 계집애를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연탄은 나에게 쓰라린 기억이다. 연탄 두 장 값을 손에 쥐어본 사람을 만나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다. 색깔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설명이라도 할 것처럼 너무 까맣다. 연탄 두 장의 무게에 나는 짓눌렸다. 점심시간이면 과자 봉지를 책상에 올려놓던 그 계집애는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어 살고 있을까. 나에게 연탄 두 장은 내일에 대한 기약이었다. 그나마 내일은 연탄집에 가지 않아도 되는 실낱같은 희망을 꿈꾸기도 했다. 그 계집애가 어떤 얼굴이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곱씹어 볼 수 있는 위안이었다. 그 계집애의 알듯 말 듯 한 표정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이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집에서 나올 때 볼일을 참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변을 참으면 병이 된다는 속설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지 않는 숲길로 간다. 흙이 보이지 않는 길에는 가끔 누군가 다녔을 흔적만 있다. 동물들의 영역표시라고 하기에는 너무 천박한 것 같고, 그냥 참고 살면 안 될 것 같은 때가 있다. 인적이 없는 곳에서 볼일을 보고 나면 왠지 모를 쾌감이 있다. 문득 연분홍 꽃이 보였다. 사과나무 꽃을 처음 보았다. 세상이 온통 연분홍으로 보였다. 겨울을 버티고 가지에 걸려있는 연분홍 꽃망울이 예쁘다. 몰래 숨어서 한 짓을 들켰기 때문일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늦게 피는 꽃이 있다. 사과나무 꽃은 화려하지 않다. 사람들이 닿지 않은 곳에서 숨어서 피는 꽃이 있다. 지기라도 되는 것처럼 가시나무 한 그루가 바로 옆에 붙어있다. 사진을 찍다가 머리를 긁혔다. 약한 것, 아름다운 것, 무엇인가를 지켜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은 저마다의 가시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꽃이 되어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피지 않는 꽃은 없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숨어서 필지라도 나 아닌 그 누군가에게 기꺼이, 수많은 날들을 조이고 풀어야 할 연분홍 추억이 되는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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