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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Apr 25. 2019

사흘만 볼 수 없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나 미움 따위로 흔들릴 시간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비가 그쳤다. 며칠 새, 봄의 색깔이 더 진해졌다. 그러나 아직은 바람이 차다. 앙상한 가지에도 결국 봄은 비집고 나올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겨울과 봄이 공존한다. 전에는 그냥 지나쳤을 것들이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린다. 살갗에 닿기 시작한다. 어떻게 숲 속을 걸으면서 눈에 띄는 것을 하나도 보지 못하고 살 수 있었을까. 걷기와 꽃과 하늘, 그리고 나. 나의 위대한 참견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걷기는 나의 메시지이다. 몸이 젖도록 몰입하는 나만의 예배이다. 나의 걷기에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한 이름을 짓는다. 


 <사흘만 볼 수 있다면>, 리더스 다이제스트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수필이다. 헬렌 켈러는 생후 19개월 때 시각과 청력을 모두 잃었다. 7살에 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나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달라졌다. 선생님은 헬렌 켈러의 손바닥에 글씨를 써서 사물의 이름을 가르쳤다. 자신의 입에 헬렌 켈러의 손바닥을 대어 진동을 느끼도록 하는 방식으로 말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녀는 1904년 매사추세츠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졸업 후 세계 장애인 복지 사업에 큰 공헌을 했다.


 첫째 날에는 오래 마주하고 싶었던 그 사람을 찾아가겠습니다. 오랫동안 그 사람과 마주하며 손끝으로 얼굴을 더듬어서 아는 법을 배우겠습니다. 눈과 코와 입과 그리고 선과 굴곡들을 지나 한없이 느려지는 감각들을 간직하겠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나의 얼굴을 대고 새근새근 잠든 그녀의 숨소리를 듣겠습니다. 세상은 온통 그녀의 숨소리로 쿵쾅거릴 것입니다. 밤새도록 그녀의 손바닥에 손글씨로 그녀의 이름을 쓰겠습니다. 소리 없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둘째 날에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 밤이 아침으로 바뀌는 순간을 같이 맞이하겠습니다. 차디찬 봄날의 아침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겠습니다. 찌뿌둥한 몸으로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를 오랫동안 안아주겠습니다. 그녀가 나를 끄는 대로 나아가 길을 걷겠습니다. 손을 귀에 대고 바람에 나부끼던 봄 잎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무릎을 꿇고 꽃잎 하나하나를 들추어 꽃향기에 취하겠습니다. 어떻게 봄의 대지가 태양과 달의 기울기를 버티고 있었는지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녀의 체온이 내 옷깃에 닿는 한, 난 어떤 것도 무섭지 않습니다. 밤하늘의 별자리를 손을 짚어 어디쯤 있는지 묻겠습니다.


 마지막 셋째 날에는 둘만의 아침 식사를 하겠습니다. 카라얀이 지휘한 차이코프스키의 6번 교향곡을 틀어놓고 커피 향기에 젖겠습니다. 커피와 빵 한 조각 그리고 사과 한 개가 우리의 아침 식사입니다. 스카이트레인을 타고 다운타운으로 가는 길, 사람들이 살아가는 표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마음으로 읽는 법을 간직하겠습니다. 미술관에서 그녀가 읽어주는 작품의 소리를 하염없이 듣겠습니다. 영화관에서 손을 붙잡고 앉아 그녀가 손으로 전해주는 감정과 소리만으로도 한 편의 영화가 얼마나 가슴 설레는 것인지 두고두고 잊지 않도록 새기겠습니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날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다. 나 사는 동안 나의 눈길이 머무는 모든 것을 껴안으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우리가 나누었던 의미들로 가득 차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을 보낼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후회나 미움 따위로 흔들릴 시간이 나에게는 없습니다.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잃어버리고 살아왔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일 갑자기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사람처럼 하늘과 꽃과 나를 보십시오. 내일이면 아무것도 들을 수 없게 되는 사람처럼 새의 지저귐과 물길이 내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내일이면 모든 감각이 마비되는 사람처럼, 마지막 꽃향기를 맡는 것처럼, 마지막 봄바람에 젖는 것처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안는 것처럼. 느리게 기억하는 법을 배우며 살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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