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님이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아침입니다. 남편은 푸파 푸파 세수를 합니다. 아내가 차린 아침 밥상에는 모락모락 맛있는 냄새가 피어납니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들립니다.
남편은 누렁이의 엉덩이를 쓰다듬고는 등에 쟁기를 올려 싣고 콧노래를 부르며 밭으로 갑니다. 손을 흔드는 아내의 얼굴에는 활짝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밭두렁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피었습니다. 살랑살랑 간지럽게 봄바람이 붑니다. 아저씨의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혔습니다. 누렁이도 힘든데 참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렁아, 힘들지?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누렁이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누렁이가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이리저리 살피고, 밀어도 보고, 끌어도 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누렁이가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누렁이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누렁이의 커다란 눈이 멈추어 있는 곳을 확인하고서야 껄껄 웃음이 났습니다. 잠이 덜 깬 얼굴로 쪼르륵 줄지어 이동하고 있는 달팽이 가족입니다. 누렁이가 밭을 갈며 뿜어내던 푸우 푸우 뜨거운 콧김이 따뜻한 봄바람처럼 느껴졌나 봅니다. 겨울잠을 깼습니다.
남편은 누렁이의 엉덩이를 쓰다듬고, 조심스럽게 나무 그늘로 향했습니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달팽이 가족을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달팽이 가족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직 달팽이집이 없는 아기 달팽이들을 아무리 천천히 잡는다 해도 망치처럼 아플 것 같았습니다.
달팽이의 사랑
“ㅠㅠ 정말 미안해. 나 때문에.”
“아니야. 정말 고마워. 네가 만약 우리를 보지 못했다면... ㅠㅠ 상상만 해도 끔찍해. 나는 너무 작아.”
“혹시 내가 너무 커서 무섭지는 않니?”
“네가 우리를 깨우지 않았다면, 겨울이 오기 전에 고향으로 갈 수 없었을 거야. 나는 너무 느려.”
“고향?”
“세상의 모든 달팽이에게는 고향이 있어. 우리들만의 사연이 있는...”
누렁이는 사연이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달팽이가 자신의 등을 보란 듯이 으쓱거리며 말을 이어갑니다.
“달팽이집이 없으면 아무리 덩치가 커도 그건 아이야.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달팽이집의 무게를 견디고 산다는 거야. 달팽이집을 지고 사랑을 찾아 모험을 떠날 수 있다는 거지.”
달팽이집이 있어야만 어른이 된다는 것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냥 달팽이집이 없으면 더 편하게 살 것만 같은데. 평생 무거운 달팽이집을 지고 살라니.
“우리의 고향은 깊은 우물이야. 두려움을 견디고 그 속으로 몸을 던질 수 있어야 해. 사랑이 필요 없다면, 그냥 살면 돼.”
“사랑에 빠지면 세상은 온통 그 사람으로 보여.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닮아간다는 거야. 자꾸만 신경이 쓰여.”
달팽이집이 있어야만 사랑을 찾아 세상 끝까지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꿈을 꾸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이 그렇게 중요하기는 한 것인지.
“우리에게는 의무가 있어. 아이들을 그 우물로 데려가는 거야. 아이들은 그 우물 앞에서 선택할 거야. 달팽이집의 의미를.”
“이제 서둘러야만 해.”
“자, 내 등에 올라타렴.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 네 번의 계절을 빠르게 지나갈 거야. 번개처럼 빠르게 느껴져서 눈물이 날지도 몰라.”
출처. http://blog.daum.net/kim410928/8821338
누렁이는 압니다.
누렁이는 그 우물이 신비한 힘을 가진 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 부부가 서로 말은 하지 않지만, 아이가 없어서 남몰래 혼자 울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왁자지껄 한바탕 소란을 떨며 뛰어가기라도 하면 얼른 뒤쫓아 가서 그 작은 손이라도 잡아보고 싶은 상상을 한다는 것을 누렁이는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