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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May 02. 2019

나는 나에게 봄을 선물한다

우리는 또, 한 송이 들꽃 같던 아이를 떠나보낸다.

 이름 모를 들꽃이 피었다. 들꽃이 밀어 올린 봄 길을 걷는다. 앙증맞은 들꽃 앞에 서면 세상은 온통 작아진다. 우리는 모두 꽃이 되어 사는지도 모른다. 꽃은 나의 삶에서 내가 놓쳤던 것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다. 사느라고 눈멀고 귀먹었던 세월에 대한 참회이다. 봄은 끊임없이 흔들리면서 나에게로 왔다. 흔들리는 봄, 내 인생에 가장 불온했고 찬란했던 봄이 가고 있다. 단언컨대 내 인생에 가장 불온했고, 은밀했고, 찬란했던 봄이었다.


 한 아이를 홈스테이로 데리고 있다. 처음, 아이를 만났을 때는 모두가 포기한 상태였다. 한 학기 동안 40일을 결석했다. 당연히 성적도 바닥을 찍고 있었다. 학교도, 홈스테이 부모도, 심지어 가디언도 아이를 향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된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며 나에게 부탁한다고 했다. 원래 나쁜 아이는 없다. 실패하기로 작정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나는 아이의 천성을 믿었다. 그리고 눈물 한 조각 반짝이던 눈빛을 읽었다. 누구도 이해하지 않으려고 했던 아이의 속사정을 이해하고 싶었다. 처음 6개월은 학교에 빠지지 않고 가는 것이 목표였다. 우리의 아침은 학교를 보내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저, 합격했어요.”


 합격 발표가 점점 늦어지면서 조바심이 났다. 먼저 이메일로 연락이 오거나 학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한참 마음 졸이고 있을 때 보내주신 카톡이 많은 힘이 되었어요. 부모의 심정으로 매일 우편함을 열어보셨을 것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뭉클했어요. 늘 곁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카톡을 받고 바로 답을 했다. 아파트 단지에 현수막이라도 걸라고 했다. 오늘은 마음껏 아들 자랑도 하고, 두 분이 축하 파티도 하라고 부추기는 내가 정작 더 행복해졌다. 귀한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어서 우리는 예측할 수 없었던 행복을 맛보았다. 부모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의 말이 맴돈다. 세월의 속도가 이처럼 빠르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아이는 9월에 토론토대학교에 진학한다. 모두가 자신을 포기했을 때, 자신도 자신을 포기했을 때 자신을 믿어주고 기다려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6월이면 고등학교를 마치고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늘 어렵다. 우리는 또, 한 송이 들꽃 같던 아이를 떠나보낸다.


 나는 나에게 이 봄을 선물한다. 나를 위해 꽃을 피운 봄 길을 하염없이 걷는다. 겨우내 얼었던 나무껍질을 간지럽히다가 싹을 틔웠던 애기 손톱 같던 봄 잎처럼 은밀했고 시리도록 하얗게 매달려서 살짝 벌어진 순백의 꽃잎처럼 찬란했다.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은 운명처럼 불온하다. 바라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더 간절할 수 있었던 것은 봄이기에 가능했다. 난, 이 봄, 꽃에 배부르고 바람에 입술을 적신다. 나를 위한 온도가 필요하다. 세상 전부를 빼고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준다. 스스로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이 되어 봇물처럼 적당히 조절하고 있던 나를 끄집어낸다. 이 봄이 아니었으면 영영 몰랐을 나에게 눈을 맞춘다. 나의 진심이, 마음 너머에 가 닿기를 기도한다. 숨죽이며 기다릴 수 있는 너와 나와의 거리를 선택한다. 나에게 맞는 속도가 있다. 때로는 나를 말랑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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