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없이 전개되어 온 것
뇌는 정신을 산출한다. 나의 뇌는 나라는 의식을 산출한다. 내 눈은 무언가에서 반사된 빛을 통해 사물의 상을 내 정신 속으로 던져놓는다. 그것도 시시각각. 나는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산출하는 나의 뇌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그러한 뇌의 구조와 기능은 내가 설계하지도 누군가 설계하지도 않았다. 진화에 따른 물질의 변화가 지금 나를 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물질세계의 부산물이다. 목적 없이 전개되어 가는 우주의 흐름 속에서 나라는 정신은 내 신체로부터 산출되었다. 내가 있을 조건은 우연 속에 마련되었다. 즉, 내 신체는 우연히 마련되었다.
우연이라면 영원한 우연일 것이지, 나는 왜 소멸하는가? 뇌는 언젠가 작동을 멈출 것이다. 그 어떤 포도당도 내 시냅스의 전기를 만들 에너지로 쓰이지 못할 것이다. 내 망막에 들이닥친 광자들은 시각의 연쇄작용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없을 것이다.
생각이 그때에 미치면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게 버거워진다. 아무것도 없다면 의미를 무엇에 기대놓을 것인가? 하나의 방법. 없는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없으니, 내가 없어지고 난 후에도 있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하여 내 정신의 관심은 개별자에서 보편자로 옮겨가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끝내 없어질 자기 자신을 두고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럼에도 있을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없음을 남겨두고, 딴 얘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허무를 견딜 수 없으니 동문서답으로 만족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왜 나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가? 이렇게 가정해 보자. 의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의미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의미 없는 일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는지 생각하면, 납득이 갈 것이다.
영원한 우연일지라도, 우리가 불멸하더라도, 우리는 삶의 의미를 물을 것이다.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찾을 필요는 없다. 묻고, 구한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없으니 구하고, 없는 것을 구하는 아이러니.
우연에 의미가 있겠는가? 단지 구할 뿐이지만, 의미를 찾는 우연이라고 해두자. 나는 의미를 찾는 우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