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나이가 들고 안들고의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지라 내 주위에 있는 주변 사람들과 상대적으로 가름된다. 물론 어디가서든 계급장 떼고 나이 떼고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려고 한다. 그러나 모임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대화의 깊이가 길어질수록 우리의 숫자나이는 어느새 '연륜의 힘'이라는 엄청난 스펙으로 감춰지지 않고 나올 때가 있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내 나이를 아직 '꽃나이'라고 해주는 언니들도 있다. 매우 아름다운 모임이다.
직장안에서는 선배들보다는 후배가 더 많은 것을 보면 나는 이제 인생에 있어서 중년에 들어온 것은 분명하다. 이런 내가 아침마다 이런 상황에도 나이든 것에 더 유쾌할수 있는 것은 내 머리 때문이다. 내 머리는 무겁다. 정확히 말하면 머리카락이다.
난 유전적으로 곱슬머리인데다 숱이 많다. 머리하러 가면 내 머리를 만져보는 담당 디자이너는 대놓고 구박을 했다. 머리가 너무 곱슬이라 힘들다느니, 숱이 많아 어렵다느니 하면서 푸념을 했다. 결국 추가요금을 더 내라는 것이다. 나는 많이 들어본 말이니 담담하게 답한다. 머리하다보면 머리가 직모인 사람도 있고 숱이 적은 사람도 있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해도 불편함이 없었다고는 못한다. 그래서 푸념하지 않은 남자디자이너를 만나고 난 그 이후 15년간 열심히 그분께만 나를 맡기고 있다.그동안 내 거주지에 따라 미용실까지의 거리가 달리 나오지만 그분을 만나러 가려면 몇십개의 미용실을 통과한 적도 있다. 그래도 내 머리의 특성을 잘 아는, 그래서 푸념하지 않는 분에게 나를 맡기러 가는 것은 당연하다.
곱슬거리는 머리가 새털처럼 많다. 미용기술이 일신우일신하여 지금은 놀라울만큼 직모로 만들어준다. 감사한일이다. 분기에 한번 정도 4-5시간 가량 딱딱한 의자에 앉아있으면 내게 곱슬 유전자가 있다는것을 완벽하게 감춰준다. 인류의 삶에 모든 기술의 발전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개인의 행복, 사회의 행복,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바가 크다. 내 삶의 행복지수가 높아졌다.
두발자유화 되기 이전 머리를 단발머리로 해야할 때가 있었다. 단발머리, 귀밑 2센티미터가 안되게 일직선으로 잘라야하는 머리 스타일이다. 나는 곱슬머리로, 새털같처럼 무수히 많은 머리카락으로 그 단발머리를 해야했다. 직모로 찰랑찰랑거려도 긴머리보다는 예쁘기 어려운 단발머리, 나는 거칠게 구불거리는 모발로 많은 수를 감당하느라 머리가 단정할수가 없었다.
당시 내 친구 남동생이 지어준 별명이 '초가집 누나'였다.
초가집 지붕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그 모양처럼 내 머리가 비춰졌기 때문이다. 덥수룩하고 부한 머리. 남모를 비애가 있었다. 단발머리를 감당하기엔 내 머리가 너무 무거웠다. 그러다가 커트머리가 가능해졌다. 나는 그 초가집 단발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다. 그런대로 덜 무거웠다.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할 그 별명은 떠나왔지만 머리카락 유감은 언제나 지속되었다. 커트라고 해도 머리는 여전히 곱슬거리며 태어났고 생존하다 빠지며 삶을 다하기를 반복했다.
초가지붕처럼 얼굴 양쪽으로 덥수룩하고 부하게 자리하고 있는 초가집누나
이후 대학에 오면서 머리카락에 약을 칠해 받침판에 대고 쫙쫙 펴주는 '스트레이트 펌'이 나왔고 미용기술은 더 좋아져 지금은 '매직 펌'이라는 신기술의 덕을 톡톡히 보고있다. 그야말로 고불고불거리는 곱슬머리로 출생해도 현존하는 강한 약과적정한 열로 직모로 만들어주는, 말 그대로 마술과 같은 '매직'펌이다.
머리카락은 새롭게 나와서 한달에 1.5cm 가량 성장, 더 이상 견딜수 없는 곱슬머리의 길이 5~6cm 가랑 되는 싯점에서는 만사를 제치고 내 전용 헤어디자이너를 찾아가야한다. 이런 번거로움은 단정해지기 노력이다. 해야한다. 남성은 단정한 머리길을 유지하기 위해 3주에 한번 잘라야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머리가 긴 여성인 나는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다.
이런 곱슬기를 매직펌으로 다스려가며 아침마다 룰루랄라할수 있는 것은 그 곱슬기가 있지만 직모가 되어이는 머리카락의 양때문이다. 초가집누나로 불리운 만큼, 무성하고 숲이 우거진 것 같은 절대적 수량 말이다.
중년이라 표현한 내 나이에 이 수량은 더 이상 무안함,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내 또래는 물론 후배들도 내 머리숱을 보며 한마디씩 부러워한다. 난 겁없이 긴 생머리를 하고 다닌다.
오늘도 찰랑거리는 머릿결로 집을 나선다. 조금더 놔두면 다음 머리 곱슬 펴주러 갈때는 허리까지 오지 않을까한다. 가끔 앞얼굴과 뒷머리에서 상상되는 비주얼과의 격차가 보는이에게 너무 많이 벌어지게하면 안되므로 뒷머리의 끝을 'C'자로 살짝 넣어주거나 'S'자로 구부려준다. 이런날은 반응이 더 좋다. 아직은 앞태와 뒷태의 격차를 봐줄만한가보다.
아프리카 밀림 만큼이나 풍성한 내 머리숱이 지금 중년의 나이로 불리우는 나를 조금 더 젊게 만들어준다. 중학생 시절 ,'초가집누나'라는 별명을 들으면서도 달리 이견을 낼수 없었던 사춘기 소녀는 그 골치거리였던 머리카락수의 혜택을 보고 있다.
인생은 공평하다, 인생은 살아볼만한 마라톤같은 경기이다, 인생은 좋은게 반드시 좋고 나쁜게 반드시 나쁜게 아닌 새옹지마같다 하는 이런 말들이 이제 그 이유를 드러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