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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Mar 22. 2022

혹시 점순이, 점돌이세요

걷기의 말들, 마녀체력, 유유출판사




마음이 단단하고 싶을 땐 건강한 작가의 책을 부러 고른다. 내 말은 잘 뭉개지는 순두부여도 내가 고른 작가의 말은 기름에 단단히 지져 먹는 부침 두부 같으면 좋겠다. 하필 두부여야 하는 이유는, 그래도 어느 정도 부서짐의 미학을 알았으면 해서. 그러면서도 밀도 있는 두부면 좋겠는 거다. 유유 출판사 책 구독 서비스를 통해 마녀체력, 이영미 작가 글을 읽게 됐다. '걷기의 말들'이다.  




저자가 보고 듣고 느낀 바와 책과 영화를 소개하고, 걷기의 사색이 담긴, 짧지만 너른 책이다. 이 책이 '나에겐 에세이'라고 생각하니 작가의 다양한 면모가 읽혀 즐겁기도 했는데, 분명 나와는 정반대의 체력을 지녔을 테고, 사회적 경험이 풍부해 맺고 끊음에 도가 튼 인생 선배면서도 인간다움을 소실하지 않은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았다. 저자의 글은 손바닥 만한 종이 한 장에 하고자 하는 말을 기승전결 착착 개어 넣은 편집자다운 글이기도 해서, 영양소 골고루 차려진 밥상을 대접받는 기분을 느낀 정도.




저자와 비슷한 면을 찾을 때면 내적 친밀감이 급 상승했다. 일단 나도 글로 밥을 먹는 편집자. 그리고 아차산 근처, 벚꽃 흐드러진 동네 출신이며, 나 또한 석가탄신일이면 동대문 일대를 연꽃등 들고 행렬하던 소녀였다. 아니, 애초에 주름지로 연꽃잎을 직접 만들었지! 저자가 언급한 모든 환경이 익숙한 바람에 "혹시 선배님?" 하고 부르고 싶었다. 게다가 내 평생소원, 홋카이도 여행을 예찬하고, 교토 또한 언급하시니, 만난 적도 없는데 하이파이브를 한 기분이다. 저자가 추천한 책은 대부분 장바구니에, 비슷한 결이 있는 부분을 체크하며 읽다 보니 포스트잇이 모자라다. 난 역시 저자에게 폭 안긴다.




오늘은 남편이 학교에 가는 날이다. 남편은 일주일에 이틀 학교에 가고, 나머지 요일은 교회에서 사역을 한다. 석사를 이미 따고, 박사 아닌 석사를 한 번 더 자처하는 남편이다. 덕분에 나는 주로 혼자 밥을 먹고, 2-3일 재택근무를 하고, 집을 치우고, 설거지, 빨래를 하다 글 한 꼭지를 써서 업로드하고, 산책을 하고, 장을 보거나 운동을 한다. 그리고 내가 사는 집, 교회에 간다. 내 현실은 그냥 주부 일상이다.




담임 목회를 하지 않는 이상 사역지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전제로 살아가는 게 부교역자 삶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어디에 가건 "살아낼 수 있도록" 지금 무언가를 준비한다. 남편은 학교로, 나는 집에서. 나도 대학원 검색을 잠깐 해보다가, 업무로 복귀한다. 어디에 갈지 모르니, 혹시 모를 외국어를 미리 공부해두는 정도이지, 결국 프리랜서로 자리잡기를 선택한다. 느리지만 천천히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글쓰기를 지속한다.



하나하나 점이 모여 선이 되는 법이다. 그러니 허투루 점을 찍으면 되겠는가. 한 걸음씩 꾸준히 걷다 보면, 언제고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가는 길이 맞는지, 가끔 고개 들어 표지판을 살피면 된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멀리 있는 미래를 막연히 좇기보다는,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게 우선이다. 한 평짜리 독방에 갇힌 박노해 시인을 살린 건 혁명의 꿈이 아니었다. 매일 반복한 '걷는 독서'였다.

"목적지는 저 먼 어딘가가 아니다. 그곳에 이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이 목적지다."
(박노해, 걷는 독서, 느린걸음)

걷기의 말들, 마녀체력, 59P




저자는 점이 모여 선이 된다 했다. 저 문장을 만난 첫날에 참 위로가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책을 폈을 땐 좀 달랐다. 언제까지 점을 찍을까. 그리고 또 며칠 뒤, 점이 모여 선. 분명 이미 알고, 누구보다 그렇게 살아가는 중인데 좀 답답했다. 어느날은 저 문장으로 힘을 얻기도, 순간 힘이 빠지기도 한다. 점 찍는 오늘 하루가 내키지 않는 게, 아무래도 내가 남편 꿈을 위해 옆에 점을 찍는 기분이라 그런가? 잠깐 허공을 봤다가, 하루하루 충실히 점만 찍다 보니, 내가 점순이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거 같구나, 한다.




점순이가 급 다급해지다가 저자처럼 단단해보려 한다. 내적 단단함이 이 책을 고른 이유니까. 이다음에 있을 그 어딘가를 상상하고 길 끝까지 다녀와봤다. 매일 같은 위치에 점을 찍어도 될 것 같은,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을 때 느낄 해방감을 미리 느껴본다. 아무도 내 상상과 변수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막을 수 없지. 이렇게 하고 나면 답답함이 가시고 좀 후련하다. 그런 면에서 (저자 문장에 따르면) 나는 표지판이나 내비게이션을 자주 보는 것 같다. 이 길이 맞나 하며 나무도 심고, 숲도 보며 점, 선, 면을 자유롭게 그어보는 거다. 그리고 곧 현실에 대한 불안과 강박에,




오늘자 온점을 꾹. 찍는다. 밀린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백신을 맞은 뒤 영 상승하지 않는 몸의 기운을 끌어모아 걷는다. 책을 읽고, 그 책이 말하는 무언가를 하게 되는 건 정말 잘 쓴 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일단 이 책 덕분에 자꾸 엉덩이를 들썩인다. 기운이 없어? 그럼 걸어야지. 아이디어가 고갈됐어? 그럼 걸어야지. 일부러 언덕길을 고르고 집에 가려면 더 먼 길을 선택한다. 추측하건대 저자가 내 친정 근처부터 자전거 타고 여의도까지 출퇴근했을 기록을 보며,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나도 될 수 있는 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걷고 싶어졌다. (차마 자전거는 아직..)




그리고 이후 어디에 있든 작은 점 하나하나가 모여 선이 된다는 생각으로, 비록 그 점이 추후 들쑥날쑥하여 엄한 곡선이 될지라도. 그것이 곧 특별한 나만의 생이라 긍정하며, 이왕이면 즐겁게 점을 찍으며 오늘 하루를 보낸다.



**작가님은 과연 나의 모교 대선배님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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