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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Oct 23. 2021

대화 복기가 취미인,

책 좋아하는 사이



교회 주일학교도 나름 학생과 교사가 있는 곳이다. 학교라는 점에서 편애를 지양하려 애쓰게 되고. 자꾸 생각나는 아이들이 있긴 하다. 어른과 어른 사이에도 나와 결이 맞는 사람, 마음이 가는 사람이 따로 있듯, 학생들과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와중에 어떻게든 공평해야 한다는 교사 입장을 유지하려 애쓰는 거다. 예를 들면, 안부를 물을 순서도 교회에 가장 오래 나오지 않는 순서부터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 그럼에도 별 수 없는 지점이 있긴 하다.



더욱이 편애고 뭐고 이젠 할 수가 없다. 코로나 이후로 아이들은 교회에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반은 잃고, 반은 남았다. 덕분에 아이들이 문득문득 그립고, 아련하다. 이와중에 세례-입교(*부모가 유아세례를 한 경우 해당) 철이 오고, 부서 아이들 중 해당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의사를 묻고, 교육을 시작해야 했다. 용기를 내어, 집에 민이를 초대했다.



민이는 책을 사랑하는 아이다.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가방에서 최근 읽고 있는 책을 보여주며 근황을 전하는 아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나도 어색한 분위기를 헐기 위한 시도를 해볼 참이었는데, 민이 또한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모른 덕분에, 가방 속 책부터 보여준 것 같다. 만나자마자 '서서.' 민이가 요즘 '집중력'에 관심이 많고, 책에서 답을 찾는 중이라는 걸 파악할 수 있었다. 민이도 나처럼,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상대와 무엇을 이야기할지 기대하고 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대화할 그 기쁨에 벅차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카드를 꺼내고 마는.



민이는 내가 하는 말을 머리와 마음에 새기는 것 같았다. 대화를 복기하며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신 그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또는 "선생님이 지난번에 연락 주셨을 때 해주신 말씀이 딱 고민되던 부분이에요"라고  했다. 본인이 책이 좋으니, 책 만드는 게 업인 내 이야기에 귀를 쫑긋했다. 우리가 만난 곳은 교회고, 그래서 내가 집에 초대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그 아이의 입교에 관한 건이라는 것은 초반에 바로 드러낼 순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올 때를 기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나게 출판 관련 업무에 대해 브리핑하고, 따로 출판사에 맞는 전공은 없다고 감히 확언하는 중에, 민이가 먼저 세례 교육을 받을 거라고 했다. 민이도 오늘 이 말은 꼭 전해야겠다 생각했나 보다. 



우리는 책을 찾고, 하나님을 믿게 된 계기를 나누며 서로의 역사를 돌아봤다. 민이는 신앙에 대해 스스로 질문 중이라고 했다. 그동안 모태신앙이기에 주어진 환경에서 믿어졌다면 이제는 살살 의심도 든다더라. 나 또한 최근 힘든 터널을 지나며 했던 질문이기에, 아주 날 것의, 진행 중인 신앙고백을 전했다.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을 잘 정돈해준 책 속 문장을 전하기도 했다. 민이가 책을 들고 자신의 상태를 말하듯, 나도 책을 들고 내가 믿는 바를 증명했다. 



헤어지기 전에 같이 집 앞 서점에 들르기로 했다. 민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했다. 나중에 나이 한 50이 되면 지방에 가서 책방을 여는 게 목표라고 했다. 나와 꿈이 같구나. 햇살 따사로운데 무겁게 입고 온 롱패딩은 잠시 두고, 민이는 내 조끼를 얻어 걸치고 서점에 갔다. 민이가 서점에서 가장 먼저 집어든 책은 내가 서점에 갈 때마다 펼쳐 본 책과 같았다. 소식지에 도장을 쿵 찍어보고 설레하는 너란 사람. (나도 찍어보고 싶었어. 소곤소곤.)






따라서, 그러므로, 아무래도 민이는 종종 만나야겠다. 오늘은 출판사, 서점 뽀개기였다면, 다음엔 같이 서점 투어를 할 생각이다. 편애하면 안 되는 거 알고, 교회가 단지 취향 맞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 것도 아는데, 그래도 우리는 만나야겠다. 넌지시 혹시 책을 읽다 저자의 생각과 민이의 생각이 충돌할 때는 없는지 살짝 물어보니, 민이는 오히려 학교 공부와 충돌할 때가 잦다고 했다. 그러니 더욱 우린 만나서 배운 바와 믿는 바의 균형을 잡으면 참 좋겠다. 



만남은 단회적인 것보다 지속적일 때 꽃을 피운다. 만남을 이어가며 같이 고통스럽고 행복한 순간을 공유해야 온전할 수 있다. 하루만 봐도 그날의 대화를 복기하며 한 번 더 감동받고, 한 번 더 즐거우니 또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민이가 집에 가며 내 가슴에 심긴 말, "나중에 제가 첫 월급 타면 쌤 책 사드릴게요!" 이 말에 하트 도장을 쿵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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