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가 사각사각했다. 내가 급하게, 열심히 쪄온 고구마였다. 한 아이는 “우와! 사모님, 저 고구마 정말 좋아하거든요.” 하고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고 적잖이 당황했고, “제가 웬만하면 진짜 고구마 좋아하는데 이건 정말…” 하고 뒷말을 잇지 못했다. 이 교회에 온 지 1년, 중고등부 아이들과 책모임을 하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은 수련회를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절대 녹초가 될 리 없는 아이들과 부서실에 앉아 있을 때였다. 한 아이와 벽에 기대 겨우겨우 말을 이어가며 쉬고 있는데, 여전도사님이 아주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모님, 한 성도님이 수박을 주고 가셨어요. 사모님이 썰어서 아이들 주시면 될 듯해요.”
난 그때까지 한 번도 수박을 직접 갈라본 일이 없었다. 결혼 전엔 친정 엄마가, 결혼하고는 남편이 썰었으니까. 애초에 그다지 수박을 사 먹은 기억이 없다.
나는 얼떨결에 함께 내려온 덩치 큰 고3 학생에게 은근히 권했다.
“협아, 처음 수박 가르는 것만 도와주면 나머지는 내가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하지만 아무리 키가 180이나 되어도 협이는 수박 앞에선 나와 함께 발을 동동 굴렀다. 싱크대 위의 20명은 거뜬히 먹을 수박을 앞에 두고 난 크게 숨을 쉬었다. 그리고 까치발을 들고 내 가슴보다 위에 있는 수박 껍질을 칼로 가르기 시작했다. 단단한 껍질 부근을 지나자 쩍 소리가 나며 수박이 갈라졌다. 읭. 쉽네. 나는 속으로 덩실덩실 기뻐했다. 그리고 쟁반에 가득 놓인 수박을 들고 가며 협이가 말했다. “제법 수박 같은데요?”
생각해 보니 첫해 청년부를 섬길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회사를 다닐 때였고, 토요일에 청년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당일에 이것저것 준비하다 왠지 냉동에 있는 찐 단호박을 내어놓고 싶었다. 반찬이 딱 한 그릇 정도 자리가 빈 느낌이었다랄까. 아마도 당시 친정엄마가 호박죽이나 해먹으라고 준 단호박 같은데, 나는 당시 주부력이 부족했으므로. 단호박이나 무 같은 채소들이 해동하면 좀처럼 식감이 별로라는 것은 생각지 못하고 괜히 당당했다. 꿀 살짝, 견과류 잔뜩 뿌려 먹음직스러운 척하던 단호박을 먹고 한 청년이 말했다. 이거 약간 무 같다고. 내가 먹어보니 시원한 단호박 샤베트 같았다.
이 정도면 웬만해선 음식 시켜 먹을 법도 한데. 신혼이던 당시 내겐 누군가 집에 초대할 땐 뭐든 직접 해서 먹이고 싶은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물론 몇 번 하다 보니 주로 망하지 않을 메뉴를 찾기도 했다. 한 번은 빵보다 밥을 좋아하고, 과자보다 제대로 된 끼니를 좋아하는 한 청년이 군대를 가기에 최후의 만찬을 준비했다. 나는 그때 건강하고 맛있는 한 끼를 준비하겠다고, 야채 가득한 월남쌈과 부추 가득한 오리고기 약간을 준비했다. 그러고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친구에게 “네가 건강식 좋아하는 거 같아서 월남쌈을 했어!” 하자, “제가 안 좋아하면요?” 하고 웃으며 농담을 날렸는데 그때는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 전 벌써 제대한 그 친구가 제일 좋아하는 건 ‘고기’라는 걸 알게 되었고, ‘아...싫었겠네’ 하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6학년을 갓 졸업한 중1 아이들이 3월에 집에 놀러왔다(아직 전인적으로 초6이라는 의미). 소시지 야채 파스타와 샐러드를 준비했는데, 파스타와 샐러드 속 채소는 모두 남아서. 아이들이 돌아간 후 아까운 채소를 버리며 다음부턴 무조건 떡볶이랑 어묵탕이나 해야지 싶었다. 그래서 진짜로 그다음엔 너희끼리 먹고 싶은 것 잔뜩 넣어 먹으라고, 즉석 떡볶이 재료를 한상 가득 놓고 골라 먹게 했는데. 글쎄? 그날의 공기를 떠올리면 즉석 떡볶이도 아니지 않나, 컵라면이면 되려나? 나를 의심했고, 그리고 점점 햄버거면 된다, 편의점만 가면 된다, 원하는 거 물어보고 사 먹이면 된다고 나의 고집이 항복을 할 때쯤 코로나가 왔고 우리가 함께 먹을 일은 없었다.
내가 지낸 애기 사모 생활은 우당퉁탕 준비하고 우당퉁탕 땅으로 떨어지는 내 마음을 주워 담는 일이다. 비단 간식이나 식사를 대접하는 일 외에도 말이다. 진짜 반갑고 좋아서 달려가면 아이들은 그냥 숨만 쉬니까. 나는 의욕이 많아 실수도 많고, 정이 흘러넘치다 못해 끈적이고 이내 말라비틀어져 잘 떼어지지 않는 물풀 같은데, 내가 주로 마주하는 성도들은 나와 달라서. 어린 시절 나는 왠지 결핍을 느끼고 찾은 교회가 제일 재밌고 피난처 같았지만, 요즘 우리 아이들은 다르기에 내 마음이 괜히 굴러 떨어질 때가 있다.
교회 학교면 틀림없이 신앙의 기초를 세워주는 일에 힘쓰면 되는데 다짜고짜 그것부터 하기가 가장 어려워, 내가 교회를 가장 사랑했을 때를 떠올린다. 무한히 받았던 관심과 성경공부 전에 함께 먹던 밥. 우리 좀 더 함께 놀고, 이야기하고, 먹어야 하지 않나. 하지만 함께 무언가를 하는 행위 자체를 언제나 겸연쩍어하는 아이들을 대하고 대하다 보면, 어느 날은 나의 지극히 이상적인 생각이 불필요한 것에 필요 이상으로 열쩡! 열쩡! 열쩡! 다하고 있는 건 아닌가 고민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싶을 땐 함께 밥을 먹자고, 집에 놀러 오라고 말하면서, 역시나 이게 맞을지 의심한다.
교회가 다시 식사를 시작했고 덕분에 부서에서도 모임과 식사가 가능해졌다. 나는 여전히 생각날 때마다 메모장에 간식 메뉴를 적는다. 그렇게 포기가 안되느냐고 할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아도 될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남편이 부서 내 가장 먼저 시작한 소모임은 ‘성경 필사 모임’이었다. 자원할 리 만무한 아이들에게 모임 어필을 하는 중에, 나는 영혼의 짝을 만났으니…
“성경 필사 모임이요? 그게 뭔데요? 저는 간식만 있으면 돼요. 대신 양이 많아야 해요.”
그 아이가 통통한 볼을 실룩샐룩하며 간식론을 이야기할 때 나는 심쿵했다. 내가 너를 만나려고 이 교회에서 지난 7년을 보냈구나.
이번 주, 생과일주스를 주문할 때 확신이 서질 않아 물으니 ‘당도는 무조건 100이죠’라는 아이들 말을 가슴에 아로새겼다. 이거였구나. 무조건 달고 짜고 맵고, 먹는 중에 막 신이 나는 그런 간식이어야 하는구나. 메뉴는 내가 평소 먹는 음식들과 반대 선상에 있는 것들을 고르면 된다. 그러면 우당퉁탕 하지 않는단 건 아니다. 나는 아마도 계속 우당퉁탕 무언가 하기는 할 건데, 마음이 우당퉁탕 굴러 떨어지지 않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아이스크림이건 빵이건 주스건 초코맛이면 마음이 평온할 수 있는 결말이 보장된다. 즉, 선생님 말고, 학부형 말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거면 된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몇 주째 연거푸 확인하고 안정을 찾은 지금, 반찬 사역에 진심이신 권사님들과 내 모습이 살짝 겹치는 것 같아 주춤했다. 이 마음이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