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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Jun 27. 2024

클럽에요? 제가요? 지금요?

석사 과정을 밟기 위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이어 사무치는 외로움에 허덕였다. 나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꽤 긴 시간 잠재웠던 알코올 중독 증세와 섭식장애가 올라왔다. 매일 낮을 음식에, 밤을 술에 절여져 살았다. 바르셀로나의 밤은 한국의 새벽. 나와 수다를 떨어줄 사람은 없다. 다른 이들이 술을 마시는 영상을 친구 삼아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없던 용기와 잠재웠던 호기심이 일어난다.


‘클럽 가고 싶다.’


이전까지 클럽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였다. 그때는 레이빙 문화가 한국에도 조금씩 소개되고 있을 시점이었고 내 곁에는 이미 국내외 클럽 정보를 줄줄이 꿰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클럽 문턱을 밟아본 건 20대 초반, 신분증이 없어 홍대 클럽에서 쫓겨났던 경험이 전부지만 음악과 춤과 어둠 사이를 비추는 조명이 있는 그곳이 내겐 썩 낯설지 않았다. 클럽 안에선 위계가 없다는 사실도 좋았다. 어차피 말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입술 읽는 사람이 소통에 유리하겠다는 추측도 맘에 들었다.


그럼에도 두려움이 더 컸다. 나갔다가 또 거절 당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 때문에 문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사는 이방인의 삶이 늘 즐겁지는 않았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 착륙하면 난 너무 큰 자유에 겁먹고 사람들은 나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전혀 위험하지 않은 거리다. 여태 소매치기 한 번 당한 적이 없다. 정 어려우면 택시를 타는 방법도 있다. 그러니까 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면서까지 스스로에게 주도권을 주길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건 계속되는 거절 때문이었다. 내 이름을 발음할 줄 몰라 나를 비켜 가는 기회들, 오물을 뒤집어 쓴 듯 기분이 더러워지는 노골적인 차별 같은 거.


레이빙을 계속 다닌 건 사실 부러움에서 기인했다. 계속되는 거절의 감각에 위축된 상태였던 나는 필사적으로 빛나고 멋진 것을 찾아 나방처럼 달려들었다. 저렇게 스타일 좋고 여유와 재미가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욕망. 그렇게 하면 나도 그들과 같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 그러면 거절 당할 일도 없을 거란 상상까지. 그래서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도 모른채 계속 클럽에 갔다. 관찰하고 흡수하기 위해서. 갈 때마다 에너지는 충전이 아닌 방전됐다. 눈치를 보고 분위기를 읽고 스스로를 타자화하느라 진이 다 빠졌다.


정신적으로 품이 많이 드는 일인 동시에 몸도 힘들었다. 새벽에 집에 들어오면 다음날 수면에도 영향을 준다. 늦게까지 깨어있으니 머리와 목이 아프다. 거기에 춤까지 추면 관절까지 쑤시다. 그래서 난 클럽에 가면 대부분의 시간을 흡연구역에서 보냈다. 배터리를 채우면서 사람구경을 했다. 그러다 보면 다가오는 이들과 말도 몇 마디 나누고, 불도 빌려주고, 물도 얻어 먹고 그런다. 그게 클럽에서 얻을 수 있는 최대의 재미라고 생각했다.


오기가 생겼다. 이 인간들이 왜 잠도 안 자고 매주 이짓을 하는 걸까. 그걸 알아내기 전까지는 클럽에 발길을 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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