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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Aug 07. 2024

킷캣에서 생긴 일

여름 베를린을 다시 찾았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바르셀로나를 잠시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테크노의 본고장에서 클러버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베를린에서의 첫날은 10시간 내내 춤추고 클러버들을 인터뷰를하느라 진이 빠져 이틀차에는 억지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시작하지 않기로 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고 가면 오고 가는 대로 두기로 하고 보일러룸과 서른 시간 파티를 즐겼다. 이후에 또 악명높은 베억하인 입장 거부를 당하고, 내 친구들은 되는데 왜 나는 안 되냐고 드러누워서 따지고 싶었지만 가볍게 목례한 뒤 그곳을 떠났다. 그동안 길에서 한 남성이 내게 따라 붙어 베억하인을 떠날 때까지 날 기다렸다 다가와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나는 제발 나를 내려버두라고 큰 소리를 내고 재빨리 다음 행선지인 베를린의 유명한 섹스 클럽 킷캣으로 향했다. 이게 이날의 복선이 될 줄은 몰랐다.


킷캣 같은 페티쉬 클럽은 복장 규율이 제법 깐깐하다. 기본적으로 라텍스 소재의 옷을 입어야 하고 전체적으로 옷보다 살이 많이 보여야 한다. 난 입고 간 평범한 옷 말고는 다른 복장이 없기에 윗옷과 브래지어를 벗은 채 탑리스로 있겠다고 하고 입장했다. 휴대폰도 앗아가고 시간도 안 알려주고 하드테크노를 빵빵 틀어대는 이 이상한 곳에서 무려 개장부터 폐장까지 9시간을 있었다. 나는 이것을 클럽 차력쇼라 부르고싶다.


곁에 누군가 없이 혼자하는 탑리스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에 윗도리만 벗은, 여기 저기 두리번거리며 “재미”를 찾는 이성애자 남성이 너무 많았다. 나는 9시간 내내 그들을 파바밧거리는 전기파리채처럼 쫓아냈다. 어떤 게이(호소인인 줄 알았으나 정말 게이 혹은 바이였던 남성)는 여자 가슴을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데 내 가슴이 멋지다며 한 번 만져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싫다고 했지만 그는 몇 번을 더 물어봤다. 자신이 마약에 너무 취해 나와 키스하고 싶다고 속삭였다. 자신과 섹스를 하자는 남성들을 뿌리치고 허락 없이 몸을 만지는 손을 밀쳐내느라 힘들었다. 웃으며 인사하다 슬쩍 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간 남자 때문에 울기도 했다.

전날 진행한 인터뷰는 사실 나를 위해 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한 인터뷰이가 했던 경계를 설정하라는 말. 그게 얼마나 중요한 행동인지 나는 그 자유로운 곳에서 혼자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No means no”라고 해도 애초에 “No”를 외쳐 본 적 없는 사람에게 그 문구는 무용해진다.


난 살면서 몇 번이나 싫다고 외치고 싶은 상황에서 정말로 발화해봤을까.

문신 하지마.

싫어.

머리 자르지 마.

싫은데?

살 빼.

싫다고.

나랑 섹스해.

절대 싫어!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인 타인의 반응을 내 안으로 끌고와 어떻게든 내 뜻대로 해보겠다며 애쓴 순간들이 떠오른다. 무언가 하고 싶지 않을 때, 누군가의 간섭을 거부하고 싶을 때 결국 결정을 내리는 건 나. 모든 게 내 손에 달렸다는 사실이 너무 막중한 책임감이라 스윽 회피하고 싶었을까. 그럼에도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이 상황을 통제하는 건 내 일이라는 사실.

파티에서 언제나 고개를 주억거리며 좋다고만 할 줄 알았던 나는 킷캣에서 “No”라고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내가 싫다고 하면 아무도 내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킷캣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부담스럽게 다가올지언정, 대부분 끊임없이 나의 허락을 구했다. 그리고 단호하게 싫다고 말했을 때 기꺼이 나를 놓아주었다. 내 몫은 내 경계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안전하기. 그리고 타인에게 실망감을 주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자책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일이다.

인터넷을 떠돌다 보면 성폭력 사건을 향한 흔한 2차 가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러게 그런 데를 왜 가?”, “그러게 왜 그런 옷을 입어?”, “그러게 더 격하게 저항했어야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데’를 간 것도, ‘그런 옷’을 입은 것도, 더 격하게 저항하지 못한 것도 피해자의 잘못이 될 수 없다. 호기심과 모험심에는 죄가 없다. 우리는 그저 존재했을 뿐. 경계 설정에 잠시 실패했을 뿐. 무엇보다 상대가 내 거절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이다.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거절에 감정을 싣지 않는 법을 우리는 끊임없이 연습해야 한다. 안전한 공간에서 파티는 계속 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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