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베를린을 다시 찾았다. 베를린에 가면 휴대폰은 내려놓고 웃통은 벗어제끼는 일이 많아진다. 이번 베를린 여행은 온전히 클럽을 위해 찾았다. 나는 이틀 동안 4개의 파티를 전전하며 도합 24시간을 클럽에 할애했다. 3박 4일 일정 중 꼬박 하루를 깨어있던 것이다. 혼자 하는 클러빙은 쉽게 심심해진다. 나는 혼자 하는 공상이 지루해져 사람들에게 클럽에서 경험한 것들을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한국에서 온 작가(출간된 책이 없기에 아직 정식 작가는 아니지만 원활한 인터뷰를 위해 조금 거짓말을 했다)라고 소개하고 클럽을 자주 다니는지, 클럽에서 얻은 것, 클럽이 두려운 이를 위한 조언 등을 물어봤다. 100명을 목표로 잡고 약 스무 명의 사람을 만났다. 브루투스와 엘라이자, 리오와 멜, 라라와 까를로, 폴라와 하비, 파벨, 조나탄, 카호와 키런, 첸, 리즈, 퍼르실라, 알렉스, 에디와 앤서니, 리노스에게 감사를 전한다.
네덜란드에서 온 브루투스와 엘라이자를 만났다. 아직 앳돼보이는 둘은 나이가 되자마자 클러빙을 시작했다. 클럽에 다니면서 둘은 좀 더 자신감이 생기고 자신의 취향을 찾았다고 한다. 그들에게 클러빙이 두려운 이를 위한 조언을 구했다. “작은 곳, 하우스부터 시작해라. 그리고 너가 원하는 분위기를 알아가고 찾아가라. 일단 집을 나와라.” 둘의 조언을 듣다보니 나의 클러빙 역사가 스쳐지나갔다. 하우스부터 시작해 딥 테크노의 세계까지 발을 들인 지난 날.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을 줄여준 클럽이라는 공간. 잊고 있던 기억들을 언어화 해준 브루투스와 엘라이자에게 고마웠다.
그 다음엔 탐스러운 곱슬머리를 가진 리오와 멜을 만났다. 리오의 영어가 서툰 탓에 멜의 이야기를 더 중점적으로 들었던 걸 기억한다. 둘은 이미 10년차 클러버들이었다. 클럽은 그들을 바꾸지 않았다고 한다. 처음엔 놀랐지만 좀 더 생각하니 그들의 그런 한결같은 성질이 멋져보였다. 클럽에 가면 대단한 변화를 할 것이라는 내 안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둘은 클럽에 처음 가는 이들을 위해 생각을 줄이고 음악과 분위기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나눠주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본 ‘피식대학’ 채널의 토크쇼 콘텐츠인 ‘피식쇼’ 중 디제이 페기구가 나온 회차가 생각났다. 한국인들은 생각을 너무 많이하고 눈치를 필요 이상으로 본다는 게 요지였다. 그걸 떠올리니 리오와 멜의 조언이 더욱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옷차림의 라라와 까를로를 인터뷰했다. 보는 사람 기를 죽이는 옷차림과 달리, 그들은 이번이 두 번째 클러빙인, 클럽과 거리가 제법 먼 사람들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라라는 클럽이 자신을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까를로는 몸을 자유롭게 쓰는 경험이 신선했다고 전했다. 자신의 몸이 불편한 사람은 몸과 친해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거기에 클러빙이 처음인 이들은 친구와 함께 하고, 기대를 낮추기를 조언했다. 그리고 까를로는 새로운 경험이 늘 불편함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우리는 종종 클럽은 재밌어야 하는 공간이고 그 곳에 스며들지 못하면 스스로 쿨하지 않은 사람, 재미없는 사람이 될 것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낯선 경험 앞에서는 누구나 작아지고 감정의 소화가 더뎌진다. 클러빙을 대할 때도 숱한 다른 도전들처럼, 내 예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내 통제 밖의 일은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폴라와 하비는 또 다른 이야기를 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클럽에 가는 둘은 보일러룸 현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었다. 복장 규정이 있는 클럽과 달리, 자유로운 클럽에서는 내가 누구든, 어떤 모습이든 상관 없다는 걸 이미 감각한 둘이었다. 둘은 클럽이 처음인 이들에게 바운더리 설정이라는 조언을 남겼다. 너무 불편하면 굳이 밀어붙이지 않기. 그리고 통제권이 나에게 있다는 걸 알기. 통제 밖의 일을 움켜잡으려 하지 않는 것만큼, 내 통제 안에 있는 일에 대해서는 확실히 주도권을 쥐는 것도 중요하다. 누구와 얼마나 교류할지, 충분한 수분 섭취와 휴식, 공간을 어떻게 즐길지 등. 클럽 안에서는 생각보다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장소를 이동했다. 보일러룸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양적 조사를 했다면 이번엔 섹스 클럽인 킷캣으로 향해 보다 심층적인 질적조사를 했다.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파벨. 첫 만남에 그는 알맞은 인터뷰이를 골랐다며 기뻐했고 자신의 말을 녹음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일러두었다. 그의 말을 조금 무시하고 인터뷰를 이어가다가 나는 급히 휴대폰 녹음 버튼을 눌렀다. 파벨은 클러빙에 있어서 실로 나와 맘이 통하는 사람이었다. 파벨의 인터뷰 답변을 인용한다.
“많은 사람들이 메이저, 자본주의 기반에 비싼 보드카 바틀과 함께 술 취한 사람이 북적이는 클럽에서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클럽으로 흘러오곤 해. 그 반대의 흐름은 본 적이 없어. 내 생각에 그건 재미 때문이야. 일렉트로닉 음악을 발견하고 그 묘미를 알아챈다면 그 음악에 춤 추기 얼마나 쉬운지, 클럽의 분위기와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의 매력을 알게 돼. 그럼 보통은 일반 클럽보다 큰 재미를 느끼게 되지.
일반 클럽의 아주 중요한 요소는 폭력성이야. 테크노 클럽에서는 그런 폭력성을 경험한 적도, 본 적도 없지. 일반 클럽에서는 술도 더 많이 마시고, 사람들은 디제이를 마주하기보다 자신들끼리 무리를 지어 춤 추고,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이 더 많이 발생하니까. 남자가 여자 뒤에 붙어서 몸을 부비적대며 춤을 춘다든지. 그에 반해 테크노 클럽은 좀 더 안전한 공간이라고 볼 수 있어. 특히 여성에게는. 이제는 사람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안전 요원인 “어웨어니스 팀(Awareness team)”이라는 게 보편화 되고 있으니까. 동의가 중요한 공간에서 여성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방식은 정말 아름다워.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
뭐든 그렇잖아. 알기 전엔 두렵고 의심이 가는 게 당연해. 하지만 알게 된다면 그 재미와 멋짐을 이해하게 되지. 비행기 타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해. 무섭고 온갖 가정에 사로잡힐 수 있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한다면 큰 일은 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어. 비행기보다도 공항으로 가는 길이 더 위험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두려움은 언제나 비이성적이야. 두려움에 맞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면이라고 생각해. 막상 대면하면 아무것도 아닌 게 바로 두려움이야.
클러빙을 통해 나는 낯선이를 대면하는 법을 배웠어. 뜻밖의 조우는 흥미로운 관계로 이어지기도 하고. 온갖 아름다운 인연과 상황을 만들 수 있어. 그리고 난 이런 조우를 클럽에서 하는 게 좋아. 왜냐면 클럽 밖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 십상이거든. 클럽에서는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지. 그리고 다른 이의 호감을 사고 그들을 편하게 만드는 능력도 생겼어. 난 이게 클러빙의 힘이라고 생각해. 클럽 안에서 나의 성적 지향, 취향, 세계를 넓힐 수 있는 기회도 누릴 수 있었어.”
파벨을 보내고 근처에서 옷을 갈아입던 조나탄을 만났다. 베를린에 산 지는 9년 된 그는 정착한 지 1년 반 뒤부터 한두 달에 한 번씩 클럽을 드나들었다. 클럽을 다니며 그에게 생긴 변화는 금주였다. 나도 마찬가지라 반가운 마음이었다. 그가 나고 자란 곳은 다른 사람 눈치를 보도록 길러진 곳인데 베를린에서는 자신과 당신이 누구든 상관 없다고 말했다. 클럽에 처음 가는 이를 위한 조언은 바로 클럽에 들어가려면 내가 클럽에서 신나게 놀 준비가 됐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드 눈 피하지 말고, 부끄러워하지 말고.
이쯤 되니 인터뷰이들의 공통적인 대답과 클럽을 향한 자세가 보인다. 클럽은 자유. 나와 타인을 향한 속박에서 해방되는 곳. 그리고 안전을 모색하며 모두를 존중하는 곳. 클러빙은 내가 오랜만에 중독되지 않고 건강하게 즐기는 취미다. 나는 중독성향이 짙어서 온갖 것에 쉽게 빠지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곤 한다. 술, 담배, 문신, 쇼핑, 영상, 활자, 운동, 음식, 관계. 뭐든 닿았다 하면 죄다 흡수해서 완벽히 그것과 나 자신을 일치시키려 했다. 클러빙은 다르다. 클럽 안에서 난 누구든 될 수 있고 아무도 아닐 수 있다. ‘무’의 상태에서 자유를 느낀 나는 그 무엇에도 중독되어 나를 옭아맬 필요가 없다. 메모를 적느라 달궈진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어두고, 주섬주섬 옷을 벗고 댄스플로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