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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희재 Sep 06. 2024

손님, 파티는 끝났습니다.

꿈을 꿨다. 꿈에서 나는 수영장이 있는 클럽을 빌려 파티를 기획했다. 열심히 파티를 즐기다가 수영장에 어떤 야구선수가 돌고래를 데려와 섹스했다. 파티장에 있는 몇몇 사람들이 충격받아 파티를 허겁지겁 마무리하는 와중에 돌고래를 ‘사랑하는’ 이들끼리 모여 울었다. 이번에도 자신들의 성애는 받아들여지지 않음에 슬퍼하면서. 우리는 어디까지 용인할 수 있을까. 클럽은 받아들임과 받아들여짐, 그리고 그 너머를 상상하는 공간이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주말. 이번 주말엔 마지막으로 친구들과 파티에 가기로 했다. 힙합 페스티벌이라는 개요의 파티였다. 어떤 것들은 자기 세계에 남을 때 가장 빛난다. 자고로 힙합은 클럽, 밴드는 페스티벌 아닐까. 그런데 여기서 다른 무엇도 아닌 힙합 페스티벌이라는 요상스런 조합을 해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어두컴컴하고 펑퍼짐하게 입은 남자와 딱 달라붙고 짧은 옷을 입은 여자, 멀뚱히 서서 핸드폰만 보는 사람과 소위말해 ‘백인여자춤’을 추는 사람이 한 공간에 있게 된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하지만 융합했을 때 더 아름다운 것도 있는 법이다. 과일과 치즈라든가 밤수영 같은 거. 그래서 앞서 말한 생각을 번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세계에 남으라는 말은 허물어야 할 틀이다.


파티에 대한 기대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친구들과 보낼 즐거운 시간만은 기다려졌다. 게다가 파티로 향하기 전, 2년 동안 맘을 주고 받은 엠버와 오랜만에 진한 대화를 나눴기에 파티에서 어떤 시간을 보낼지는 더이상 상관 없어졌다. 우리는 비슷한 인생의 한 점에 있었다. 긴 설명 없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은 충분했다.

파티에 도착해서는 며칠 전 훠궈 모임에서 만난 두두와 그의 애인 야기와 인사한다. 배도 채우고 수다도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몬주익 중턱에 있어 멋진 노을을 감상할 수 있었다. 어스름이 내려앉고 사람들이 점점 공간를 채웠다. 야기가 자리를 떴다. 정신을 차려보니 테이블에 내 라이터가 없다. 분명 야기가 가져간 것이다.


중간중간 라이터를 그리워하며 댄스 플로어로 내려갔다. 래퍼가 아무래도 랩보다 말을 많이하는 것 같다. 래퍼가 중얼중얼대다가 마이크에 대고 소리친다.

“이새끼들아! 오늘이 우리가 만나는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이건 졸라 기념해야 한다! 존나게 크게 소리 질러라!”

이름 모를 화난 래퍼의 말에 내 마음이 움직였다. 오늘은 엠버를 마지막으로 보는 날. 친구들을 보는 마지막 날이자 자유로운 파티도 아마 당분간은 마지막으로 즐길 수 있는 날. 야기가 내게 라이터를 돌려줄까? 그게 나에게 내려진 계시가 될 것 같았다. 야기에게서 라이터를 돌려받지 못하면 여기서 만난 친구들을 영영 못 볼 것 같았다. 이런 시간이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재닛 하디와 도씨 이스턴이 지은 <윤리적 잡년 : 자유로운 사랑에 대한 실용지침서>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당신이 주변 사람들을 그들의 피부색, 젠더, 지향, 말하는 방식, 옷차림, 종교 또는 출신국가를 이유로 무시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알려줄지도 모르는 새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들을 결코 듣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새로운 지혜를 찾아보기를 권한다. 지혜는 숱하게 있으며 그것을 찾아볼 때 당신은 더 풍요로워진다.”


아마 꿈 밖에서, 그리고 클럽 안에서 돌고래를 사랑하는 이를 만났다면 나는 파티를 마무리짓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새겼을 것이다. 내가 숱하게 그래왔던 것처럼. 처음으로 트랜스젠더와 밤을 새워 놀며 전자담배 하나를 선물 받았을 때, 클럽 안에서 휠체어 탄 배우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 나와 인종은 다르고 성별은 같은 사람에게 동성적인 관심을 받았을 때처럼. 부끄럽지만 그럴 때마다 내 안을 구성하던 누군가를 배제하고 밀어내던 껍데기도 한낱 계란껍질처럼 파스스 찌그러져 깨졌다.

반대로 클럽은 내가 받아들여진 공간이기도 하다. 클럽에서 만난 사람들은 늘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려 노력했다. 큰 체구의 아시안 여성은 클럽 밖에서와 달리 공간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어떠한 미안함도 느끼지 않아도 됐다. 나의 색다름을 사람들은 환영해주었고 그건 다양성 쿼터 밖의 일이었다. 파티 속에서 난 그저 나로 존재해도 충분한 사람이었다.


해가 지고 사람들의 취기가 점점 오르는 걸 바라보며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두두와 야기다. 그들에게 한달음에 달려갔다. 야기, 내 라이터를 돌려주겠어? 야기는 웃으며 내 라이터와 내 것이 아닌 라이터까지 꺼내 내게 쥐어준다. 라이터를 돌려받지 못한다면 친구들을 잃을 것이라는 나의 망상을 새로운 라이터라는 보상으로 다시 채워졌다. 나는 또 어디서 어떤 사람들과 어떤 마음을 나눌까. 엠버와 나는 쿵짝대는 비트와 고래고래 소리질러대는 래퍼들에 질려 일찍이 자리를 뜬다. 마지막 포옹을 나눈다.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정말.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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