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족하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부족하게 자라지도 않았던 지극히 평범했던 10대. 물론 그때로 돌아가 모든 걸 새롭게 시작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굳이 그래야 할까? 공부, 인간관계, 도전 등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그 시절 또한 나의 일부였으며 그로써 지금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니 아쉬워말고 순응해야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건 다름 아닌 2015년 여름. 심장이 두근거릴 만큼 열정을 쏟아붓고 싶은 일생일대의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이뤄냈던 나. 이따금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꿈이 실현되는 첫날, 바로 그때로 말이다.
그때의 터질듯한 설렘을 한 번만 더 느껴보고 싶다. 첫 승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던 때, 그리고 크루즈에 탑승하는 그 순간 나를 스쳤던 공기까지도 기억 저 편에 존재하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 내 몸 구석구석에서 반응하던 세포를 하나하나를 되살려 보고픈 욕구가 솟아오르는 건, 정말이지 어쩔 수가 없다.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이직을 결심하던 중 뜻밖에도 나는 한 가지 기회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국에 머물 당시 마침 대경대학교에서 '크루즈 전문인력 양성과정' 3기를 모집 중이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지정 국비 교육과정이지만 고용노동부 정부지원 사업이기도 한 이 프로그램은 나날이 발전 변화하고 있는 크루즈 산업을 이끌어 갈 미래 크루즈 핵심 인재를 창출하고자 하며, 향후 떠오르는 크루즈 산업의 국내 정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크루즈 산업의 발전과 먼 훗날 등장하게 될 국적선에 대비해 요구되는 인력을 양성하고자 하는 취지라니, 전공자 입장으로썬 이보다 더 고마울 수가 없다. 실제로도 상당수의 인원이 이 과정을 수료한 후 크루즈승무원의 길을 걷고 있으며, 끝끝내 육지에서의 삶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크루즈'라는 분야에 새로이 눈을 뜬 분들 또한 적지 않으니 반가울 수밖에.
대경대학교의 낮과 밤
본 사업은 전체 12주의 기본 교육을 이수한 후 약 2개월 간의 해외연수교육까지 포함하고 있으며 교육 수료 후 국내외 크루즈 선사의 인터뷰를 거쳐 채용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반드시 이 프로그램을 이수해야만 승선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참여자는 교육과 채용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케어를 받게 되며 실제로 교육과정의 덕을 본 인원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아 많은 이들에게 유익한 시간으로 남지 않았나 한다.
이론 수업에서는 크루즈 산업의 이해부터 발전 과정, 역사 등을 다루었다. 때로는 현재 크루즈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께서 직접 자리해 특강을 진행해 주시기도 했다. 비전공자 기준으로 수업내용이 큰 흥미를 불러일으키진 않았을 테지만 그래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만큼 참여자 모두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선내 안내방송에 관련된 스크립트를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며 실전처럼 연습하거나 안전훈련, 라이프 재킷, 구조, 비상식량 등 선상 용어를 주제로 두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다. 구난 식량을 맛보았던 수업 시간은 선상 경험이 있는 나 조차도 경험해보지 못한터라 의도치않게 도전의식을 불러 일으켰다.
이미지 메이킹 시간에는 담당 교수님과 함께 승무원 헤어와 메이크업, 자세, 어투, 인사법 등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다. 실제 면접을 대비해 스터디와 모의면접을 준비하는 시간은 참여자 모두의 눈망울을 순식간에 반짝거리게 만들어주었다.
카지노 게임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블랙잭, 룰렛, 바카라에 대한 간단한 이론 공부와 함께 직접 칩과 카드를 다루는 수업을 카지노 강의실에서 진행했다. 과정 참여자의 대부분이 카지노 교수님의 딜링 스킬에 눈이 휘둥그레져 환호성을 터트리거나 물개 박수를 연달아 치곤 했었다.
대경대학교 내부에 위치한 42번가 레스토랑에서는 호텔 실무수업이 이루어졌다. 본관 강의실에서 진행된 와인, 커피, 칵테일 실무 수업은 시음과 제조의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다.
나에겐 익숙한 시간이었지만 주변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입과 눈이 즐거운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과정 내 모든 실무 수업에 있어서는 전반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표했다.
크루즈승무원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중 하나, 바로 선원의 신분증명서인 선원수첩이다. 이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부산 영도에 위치한 해양수산 연수원에서 일정 기간 해당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학교 다닐 적 사비로 선원수첩을 취득했던 나는 이 모든 교육과정이 국비로 지원된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교실 밖에서 이루어지는 기항지 관광 수업 시간에는 팬스타 크루즈에 승선해 일본 오사카에 방문하였다. 국내에서는 부산, 울산, 여수, 대구를 탐방하며 비교적 자유로운 수업이 진행되었다.
유달리 열정과 의지가 가득했던 우리 기수는 해외 크루즈 선사 면접의 성공을 위해 피곤한 줄도 모르고 앞만 보고 전진했다.국내에서의 교육이 일단락될 때 즈음 우리는 해외 연수 교육을 앞두고 설레는 마음에 매일 밤잠을 뒤척였다.
누군가 그랬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바닷길이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도전하는 이에겐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한 없이 너그러운 곳이지만 겁먹고 망설이는 이에겐 태풍이 휘몰아치는 폭풍전야와도 같은 곳.
고민이 많던 시기에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를 만나 다시 한번 크루즈승무원의 꿈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길은 선사와 1:1로 컨택해 승선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기에 비교적 쉽다는 편견이 더러 있는데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격한 후의 이야기가 되겠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 앞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