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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an 13. 2021

"잠은 어디에서 자?"

크루즈승무원이 머무는 공간

카지노 부서에서 근무를 하는 나는 승객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기회가 참 많다. 카지노 테이블에서, 슬롯머신 섹션에서, 카지노 케시어에서, 카지노 바에서, 혹은 카지노 업장 밖에서까지도.


그렇다 보니 시간적으로 여유로울 때면 그분들의 일대기를 듣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게 재잘재잘 수다 떨기를 좋아하시는 승객이 마음씨가 곱고 심지어 재치까지도 있다? 그럼 그날의 근무는 몇 배로 유쾌하게 흘러간다. 이러한 승객들은 대부분 정년퇴직을 하시고 남은 여생을 즐기며 살아가시는 분들이며, 그중 상당수는 크루즈 여행이 너무나도 당연한 삶의 루틴이다.




잠은 어디에서 자?


이는 크루즈승무원이라는 직업이 생소한 승객들에게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특히나 상대적으로 크루즈 여행 경험이 많지 않으신 한국인 승객분들께 여태껏 가장 많이 들어왔던 질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주 오래전 한 승객으로부터 처음 이 질문을 받게 된 때였다. 질문을 듣고 순간 당황한 나머지 두 눈의 동공이 확장됨과 동시에 미간의 간격이 한껏 더 좁혀졌다. 그 승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속으로 얼빠진 내 모습은 꽤나 우스꽝스럽게 비쳤을 테다.


여태껏 반박할 여지 조차 없다고 생각해 왔던 것들의 패러다임이 단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크루즈승무원들도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크루즈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한다라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사실 말이다. 승객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미지의 세계 속 이야기가 역으로 나의 흥미를 강하게 이끌었다.


여전히 크루즈 여행이 낯선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이라고는 하지만 처음에는 이러한 질문공세가 매우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매뉴얼을 만들어보기 시작했고, 그러한 상황을 직면할 때면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이해하기 쉽도록 전달해 드리곤 하였다.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 크루 캐빈

크루즈 선 내부에는 승객들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에 승무원 들의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크루 캐빈(승무원 방)부터 크루 바(승무원 전용 바), 승무원 전용 수영장과 식당 등등. 승무원 역시도 승객과 마찬가지로 크루즈라는 공간 내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크루 캐빈의 구조와 형태는 크루즈 선사마다 상이하며 같은 선사라 하여도 각각의 선박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국제 선사의 경우 대부분 캐빈 하나당 두 명의 크루를 배치하는 편이며 직급이 높아질수록 1인 1실을 갖게 될 확률 또한 높아진다. 크루 한 명당 침대와 옷장을 나눠 가지며 화장실과 책상, 의자, 냉장고 등은 둘이서 함께 사용하는 게 보편적이다.



나의 첫 번째 컨트랙이었던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 볼렌담호에는 캐빈을 관리해주는 캐빈 스튜어드(cabin steward)가 각각의 캐빈마다 배치되어 있었다. 매니저 직급이 아닌 나 역시도 캐빈을 관리해주는 친구가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거의 매일을 캐빈에 방문해 쓰레기통을 비워주고 휴지를 채워주고 타월을 갈아주고 청소기를 밀어주거나 침구를 정리해주었다. 심지어는 유니폼 세탁을 원할 시 폼을 작성해두면 직접 런드리에 맡겨주고 가져다주기도 했다.


첫 컨트랙이기도 하고 잘 알지 못했던 승선 초기엔 '아, 좋은 크루즈 선사는 이런 것도 해주는구나'하고 생각 했었다. 하지만 선사에서는 어디까지나 기본적인 서비스만 제공할 뿐 내가 받은 서비스만큼 해주지 않는다는 걸 알고선 깜짝 놀랐었다. 이렇게 세심하게 잘 챙겨주는 스튜어드에겐 매달 을 주는 게 예의라는 것도 아주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날마다 즐겁고 상쾌한 선상 생활이 계속 이어져나갔다.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고맙고 감사한 나날들. 이렇게 특별한 대우를 언제쯤 다시 받게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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