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승무원을 준비했고, 크루즈 승무원으로 바다 위를 누비며 근무했던 사람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테다. 아마 모두들 한 번쯤은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리저리 골머리를 앓았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 싸움에서 유유자적하게 승리의 맛을 봤을 테고, 또 누군가는 가차 없이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을 테다. 기약 없는 그 기다림 속에서 갈 곳 잃은 두 발은 동동 구르기만 할 뿐, 방황이라는 교차로에서 하염없이 맴돌기만 했을 테지.
그나저나 이게 무슨 말이냐고?
소속감과 무소속 감의 그 중간이라고나 할까. 크루즈 승무원이 되어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유독 나는 하선 후 끝이 보이지 않는 휴가를 받는 특이한 케이스였고 그래서인지 쉽게 회의감에 빠지곤 했었다. 5주면 재승선을 하는 주변 친구들과 달리 재승선 하기까지에 무려 3개월이라는 시간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그 무엇도 나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분명 나는 직업이 있고 돌아갈 직장이 있는 어엿한 직장인인데 주변의 시선들은 하나같이 애매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자 영락없이 불투명한 미래에 기대어있는 그저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처음에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남들이 별생각 없이 하는 얘기니 귀담아듣지 말자 싶었지만 마음먹은 것만큼 사고를 바꾼다는 건 쉽지 않았다. 이는 크루즈승무원이 되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변수였고, 그래서 더더욱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넘쳐만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이대로도 괜찮은지 늘 물음이 가득한 하루하루를 그저 흘러 보냈다.
하선 일주일 째는 알람 없이 기상하는 일상에 더 없는 행복감을 느끼고 이주 째가 되면 24/7 대기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로운 환경, 그리고 입에 꼭 맞는 음식 덕분에 편안함을 느끼지만 삼주 차로 접어들면 이 모든 것들이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신없이 쳇바퀴 돌던 선상생활이 사무치게 그리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기나긴 기다림의 한가운데서 끝이 있긴 한 걸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힘이 들 때면 신기하게도 회사에서 재승선 메일이 날아왔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으로 승선하게 될 거란 당연한 나의 기대를 깨 버리고 카니발 선사는 나의 두 번째 컨트렉을 프린세스 크루즈로 배정했다.
당시 프린세스 크루즈사의 최신 선박이자 가장 큰 14만 톤 마제스틱 프린세스에서 근무하게 된다 생각하니 마음 졸이며 기다렸던 지난날들의 고충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