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만 톤의 중소형 크루즈 선에서만 근무했던 내게 14만 톤의 크루즈는 말 그대로 소설 속에 나오는 휘황찬란한 궁전과 다름없는 공간이었다. 크루즈가 처음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았는지. 나는 근무 시간을 제외하고는 크루즈를 처음 타 본 육지인 마냥 선내 곳곳을 기웃거리며 쏘아 다니기 일쑤였다.
중국, 일본, 홍콩, 베트남, 싱가포르, 태국, 대만 등 아시아 노선을 항해하는 마제스틱 프린세스의 스케줄은 해상법에 따라 카지노 오픈 시간이 때때로 유동적이었다. 브릿지에서 정해준 스케줄을 기본원칙으로 하나 이따금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매니저의 재량으로 스케줄에 변화를 주었기 때문이다. 전해 일상은 이틀이 최대였고 포트 데이마저 카지노를 오픈하지 않거나 오픈해도 일찍 클로즈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처럼 선내 다른 부서 친구들 모두가 부러워하는 카지노 부서의 스케줄 덕분에 우리는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되는 스케줄 속에서 워라벨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었다.
전원 오프를 받는 날에는 대체로 극장에서 쇼를 보거나 크루바에서 조촐하게 파티를 열었다. 물론 캐빈 파티도 빠질 수 없겠다. 그밖에 자정이 다 되어 출항을 하는 날에는 승객들처럼 밤늦은 시간까지 기항지 관광을 하거나 오픈덱에 올라가서 영화를 보고, 혹은 크루들을 위한 행사(ex. 빙고게임) 등에 참여를 하며 크루 라이프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중 누군가로부터 승객 전용 헬스장을 이용하러 가자는 제안이 나왔고,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근무가 없는 날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마제스틱 프린세스호의 카지노는 크루즈 선의 중앙인 6층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인지 캐빈과 카지노만 오가는 데일리 루틴에서는 일부러 시간을 내어 오지 않는 이상 14층의 바다뷰를 보기가 좀처럼 힘들다.
형형색색의 화려한 불빛이 쉴 새 없이 번쩍이는 카지노 업장에서 근무를 하다 투명한 창 너머로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를 보니 일순 속이 뻥- 뚫렸다. 심지어 수평선보다 한참 높은 곳에 서 있는다는 걸 자각할수록 그 쾌감은 배가 되었다.
'이 정도 바다뷰라면 욕심내서 올라올만하군.'
승무원 전용 헬스장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좋은 장비가 가득한 승객 전용 헬스장에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승선 초기에 선내 투어를 하였으나 무의식적으로 헬스장을 이용하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교체되는 깨끗한 수건과 목을 축일 수 있는 작은 개수대 그리고 다양한 장비와 신나는 음악까지.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분명 여기가 천국일 것이리라.
하지만 어떤 운동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나는 거듭된 고민 끝에 에라 모르겠다 하며 우선 러닝머신 위에서 냅다 달리기로 했다. 운동하는 방법을 모르니 유산소 운동이라도 꾸준하게 해 보자는 결심이 컸을 테다.
같이 온 친구들 중에서는 설렁설렁 움직이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와는 반대로 매우 진지하게 임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그들은 그날 해야 할 운동량을 정해두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전까지는 옆 사람이 떠나는 한이 있어도 묵묵히 자리를 보존하며 할당량을 완수해나갔다. 저들의 끈기와 열의에 상당히 놀랐지만 어쩐지 아직은 그 열정을 따라갈 힘이 턱없이 모잘랐다.
지금까지 컨트랙을 갱신하며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은 크루즈승무원이라는 직업은 체력적으로 고된 만큼 건강관리에 소홀할 수 없다는 점이다. 처해진 상황이 사람을 바꾼다고, 그리하여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건강을 위해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