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00: 떠나기 전의 망설임

커리어와 가족 사이, 엔지니어의 딜레마

by JP 정표

해외 파견이라는 말은 멋있게 들린다.

"글로벌 커리어, 유럽 생활, 가족과의 새로운 경험."


하지만 회사로부터 IMEC 컨소시엄 2년 장기 파견을 제안받았을 때,

내 안에서 가장 먼저 올라온 감정은 설렘이 아니라 묵직한 '무게'였다.


나는 이미 해외살이의 매운맛을 본 적이 있다.

2020년 미국, 코로나 락다운 속에서의 1년. 행정, 비자, 의료, 언어, 외로움

해외생활은 화려함보다 '버팀'과 '적응'해야 하는 '생존 공정'이라는 걸

몸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유럽 파견은 더 현실적으로 계산기를 두드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망설인 사람은 나였고, 처음 반대했던 사람은 아내였다.


"그렇게 가고 싶으면… 혼자 먼저 가."


수술을 마친 엄마 곁을 떠나야 하는 딸의 걱정이었다.

장모님은 대장암 4기셨다.

"혹시라도 내가 없는 동안..."

그 뒷말을 삼키는 아내의 마음이 가장 무거웠다.


내 쪽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중3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계신 어머니.

나이가 들어도 부모님 곁을 떠나는 일은 여전히 불효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커리어'. 부장 중반, 엔지니어로서 가장 치열하게 기술을 쌓고 승부를 봐야 할 시기.

"다녀와도 내 자리가 있을까?" "남들은 라인에서 뛰는데, 나만 옆길로 빠지는 건 아닐까?"

온사이트 매니저(On-site Manager)라는 역할이 성장은 맞지만,

주류에서 멀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은 얇은 산화막처럼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결국 우리는 떠나기를 선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었다.

국제학교라는 환경, 다른 문화의 공기를 마시며 자라는 경험.

그건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도, 어떤 학원에서도 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내가 마지막에 결단을 내렸다. "가자. 이건 우리한테도, 애들한테도 기회야."


아픈 몸으로도 "아이들 위해 가라"라며 우리 등을 떠밀어주신 장모님 덕분에,

그렇게 우리는 벨기에행 비행기에 올랐다.


불확실성(Uncertainty)을 안고 떠나는 비행. 그것이 Etch the Life, 유럽 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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