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유럽 생활의 청구서
그 모든 망설임 끝에 비행기에 올랐지만,
착륙하고도 우리는 한참을 ‘도착’하지 못했다.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전전하며 두 달. 짐 없는 방, 낯선 조리도구,
임시 주소. 불안과 기대가 매일 조금씩 흔들리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곳, 테르뷔렌(Tervuren).
아이들이 다닐 국제학교(BSB)가 있는 동네.
아파트에서만 살던 우리 가족이 처음 발 딛는
‘정원 있는 이층 집’이었다.
처음엔 설렘 더 컸다.
주말이면 바비큐 파티, 여름엔 시원한 맥주 한 잔.
영화 같은 삶을 꿈꿨다.
그때 아내가 피식 웃으면서 찬물을 끼얹었다.
"근데, 저 잔디는 누가 깎아?"
처음 받은 잔디 관리 견적서에 내 눈을 의심했다.
2주마다 방문, 연 600만 원. 2년 살면 1,200만 원.
한 달 월세가 아니라, 오직 '잔디' 유지비만 50만 원이었다.
결국 나는 아마존에서 잔디 깎기 3종 세트를 주문했다.
주말에 테르뷔렌은 ‘고요한 숲’이 아니라
‘엔진 사운드 트랙’이 되었다.
이웃집 아저씨가 지나가며 웃으며 말했다.
“참고로요, 일요일은 조용히 지내는 동네입니다.”
(기계 돌리지 마세요.)
환영 인사 속에 뼈 있는 규칙.
그곳의 방식이었다.
진짜 재앙은 난방이었다.
에너지 등급 B라는 집주인 말만 믿었는데,
체감은 F에 가까웠다.
멋있어 보이는 거실 벽난로에 초반 한 달간 틈나는 대로 불을 지폈다.
낭만적이었다.
그리고 날아온 고지서: 가스비 150만 원.
그날로 벽난로는
‘손님 접대용 인테리어’로 전락했다.
우리 가족의 겨울은 한국에서 공수해 온 난방 텐트와 온수매트가 지켰다.
100평 집에 살면서, 실제 따뜻한 공간은 방마다 1평씩, 총 3평.
한국의 24도 온돌 바닥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여기서 우리는 실내 온도 15도에 적응해야 했다.
집이 이러했으니, 행정은 말할 필요도 없다.
거주증 신청은 시청에서 경찰서, 우편, 다시 시청으로 이어지는 무한 루프.
인터넷 설치 기사는 "사정이 생겼다"며 오지 않는다.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기사와 연락이 안 됩니다"라는 말뿐.
여긴, 신뢰를 시간과 발품으로 증명하는 나라였다.
그 와중에 우리는 살아갈 기술을 배웠다.
가구는 이케아에서. 200유로 이상 사면 10유로 쿠폰을 준다는 걸 알고부터,
아내와 나는 계산대를 나눠 100유로씩 끊어 결제했다.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때로는 고상한 정보가 아니라 찌질한 요령이었다.
그러다 어느 저녁, 벨기에답지 않게 눈이 쏟아졌다.
지붕도 마당도 하얗게 잠겨 있었다.
아이들은 신나서 밖으로 뛰쳐나갔고, 우리 부부도 홀린 듯 따라나갔다.
차가운 공기에 얼굴이 얼어붙고 손끝은 금방 시렸지만,
그 순간만큼은 150만 원 가스비도, 잔디 깎는 노동도 잊었다.
우리는 그저 눈을 좋아하는 가족이었다.
가장 추운 겨울이었고, 가장 따뜻한 기억이었다.
로망은 공짜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값을 혹독하게 치르고 나니, 삶은 더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