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나의 작품만을 위한 미술관
나오시마 옆에 있는 섬인 테시마. 나오시마만큼 잘 알려진 곳은 아니지만 역시나 예술의 섬으로 불리는 장소 중 하나이다. 이번 여행의 가장 하이라이트이며 핵심 장소였던 테시마 미술관에서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자 심장소리 아카이브, 테시마 미술관, 시마키친, 요오코 타다노리관 순으로 여행을 진행했다.
심장소리 아카이브는 그곳으로 가는 길 자체가 너무 예뻤다. 다행히 날씨도 좋았기에 반짝이는 햇빛을 따라 새소리에 이끌려 가다 보면, 어느새 바다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는데 그 파도소리 근처에 마치 오두막집을 연상케 하는 집 한 채가 나오고, 바로 그곳이 심장소리 아카이브였다. 심장소리 아카이브는 전 세계 몇십만 명 사람들의 녹음된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과, 암실에서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본인의 심장소리를 녹음하는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약 10년 전부터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프로젝트로 반갑게도 한국에서도 녹음이 진행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전 국가 별로 심장소리를 하나하나 듣다 보니, 같은 심장일지라도 그 소리가 제각각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면서 문득 나의 심장소리도 궁금해졌다. 1500엔을 주고 결국 내 심장소리도 녹음했는데 (청진기로 녹음한다 ㅎ), 건강하게 잘 뛰는 소리를 들으며 여태껏 잘 살아온 나 스스로를 칭찬해 주는 시간도 짧게나마 갖게 된 것 같다. 뿌듯하고 대견함과 동시에 심장소리 아카이브라는 작품에 나도 함께 참여한 것 같은 기분이라 괜히 으쓱해졌다.
테시마 미술관은 사전 예약이 필수인데, 꿀팁은 재입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재입장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장 후 따로 안내해주진 않았지만, 미리 블로그를 통해 알게 된 정보로 혹시나 해서 "재입장되는지" 따로 물어봤고, 문제없다는 안내를 받고 오전 11시에 한번 그리고 오후 14시경 한번 이렇게 방문했다. 방문 전 테시마 미술관의 사진들을 찾아보면 "물방울"을 확대한 사진들만 많았는데, 그래서 정말 물방울 자체가 작품이 될 것이라곤 생각도 못했고, 물방울을 형상화 한 조각들을 전시해 둔 것으로 생각했다. 단 하나의 작품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쓰여는 있었지만 그런 미술관을 평생 가본 적이 없었기에, 과장한 표현일 거라 지레 짐작했던 것이다. 물방울 조각 말고 다른 작품들도 있겠지라는....
그런데,
정말 단 하나만의 작품만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작품은 조각도 조형물도 아닌 정말 "물방울"이었다. 마치 우주선처럼 보이는 두 개의 원형 공간 사이에 기둥이나 구조물과 같은 그 어떤 방해물도 없이 널찍한 공간 위로 두 개의 아주 큰 원형 창문이 뚫려 있었는데, 그 사이로 빛과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새어 나오는 빛 주변으로 군데군데 물방울들이 보였는데 자세히 관찰해 보니, 콘크리트 바닥 위로 수백 개의 구멍이 뚫려있었고 그 사이에서 물줄기들이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정 속도와 규칙이라도 있는 듯 솟아오르며, 그 나름대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신발을 벗고 입장하는데, 자칫 잘못하다 물방울을 밟아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밟는 것은 상관없지만 양말이 젖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태초에 정말 아무것도 없었을 때, 성경 말씀처럼 빛과 어둠, 물만 있었던 그 공간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 시간에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길이. 온몸으로 이를 느끼고자 하는 다양한 관람객들의 모습들. 더러는 누워있고 더러는 앉아있고 더러는 위를 쳐다보기도 더러는 땅을 쳐다보기도 하며 그 모습 자체가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 역시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몇 분 동안 누워있기도 하고, 원형 창문을 통해 쏟아져내리는 빛과 바람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 땅 위로 솟구쳐 오르는 물방울이 만들어내는 소리들을 느끼며 내가 땅 위에 누워있는 건지 하늘 위에 떠있는지 조차 모르는 생각이 들었다. 테시마 미술관은,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사람도 물체도 공기도 빛도 소리도 어둠까지도 작품을 이루는 주인공들이었다. 단 하나만의 작품만을 위한 미술관이며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작품이 되는 공간. 미술관이 갖고 있던 정형화된 스테레오타입을 완벽하게 무너뜨려 준 그런 전시 공간이었다.
アーティスト・内藤礼と建築家・西沢立衛による「豊島美術館」はアートと建築、自然が一体となった建築。 - #casa (hash-casa.com)
(테시마 미술관의 작품 설명, 그 배경에 대해 설명된 기사, 일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