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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 May 28. 2023

[베네세 미술관] 나오시마

현대미술이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어?

2023년 5월 골든위크를 맞이하여 미술의 섬인 나오시마와 테시마 섬을 방문하기로 결정. 7년 만에 재방문하는 나오시마인지라 하루동안 어떤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가장 만족도가 높을까 고민한 끝에 2022년 3월에 개관한 '스기모토 히로시 : 시간의 복도'라는 설치미술(예약 필수!)을 가장 먼저 보기로 결정, 이우환 미술관, 베네세 미술관 순으로 조금은 빠듯하게 관람했다. 나오시마 미술관 중 가장 유명한 지추미술관이나 이에 프로젝트의 경우 7년 전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시간 관계상 아쉽게 포기하였는데, 모네의 수련과 지추미술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압도적인 분위기를 다시 맛보고 싶단 생각에 "지추미술관"은 근시일 내에 다시 방문해야겠다. (나오시마에 또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ㅎ)  


결론적으로 나오시마 여행을 통해 7년 전에는 느낄 수 없었던 현대미술 감상의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찾을 수 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올해부터 조금씩 미술 전시 감상에 재미를 들이면서 회화 중심으로 시간이 될 때마다 전시회를 찾아다니곤 하였는데, 설치미술은 영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울뿐더러 일반 회화처럼 심미적인 요소도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많아, 대체 이건 뭐지?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나오시마에서의 시간을 통해 현대미술을 감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조금은 체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작품도 마찬가지겠지만 현대미술은 특히 더더욱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분명하게 있기 때문에,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그가 작품 속에서 표현하고 싶은 의도/주제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일반 회화의 경우 보통 완성된 형태의 새로운 창작물로서의 작품들이 대개 전시되는 반면, 설치미술로 대표되는 현대미술의 경우 조형물 자체가 갖고 있는 의미도 중요하지만, 이 작품을 구현하기 위한 전체적인 과정들, 조형물을 이루고 있는 재료나 요소들의 성질까지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내포되어 있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는 단순 눈앞에 놓여있는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을 기획하고 만들기까지의 그 과정 전체까지 감상의 범위를 넓혀서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없던, 그저 평범하게 보이는 사물들에 "작품"이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일상 속에서 마주하던 사물들이 작가가 의도하는 의미로 새롭게 탄생되며, 그렇게 재창조되는 과정까지 작품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니,  눈앞에 보이는 조형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역시 새롭게 재탄생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상적인 사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작품으로 재탄생 시킴과 동시에 이를 바라보는 독자들에게 어떠한 인스피레이션 (= 영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이를 의도하고 기획하고 구현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작가의 능력이지 않을까?


베네세 미술관의 실내 작품들과 이우환 미술관에서 감상한 작품들에서 특히 현대 미술 감상의 재미있는 요소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억에 남았던 작품 중 하나는 베네세 미술관에서 天秘(천상의 비밀)이라는 제목을 지닌 두 개의 조형물이었는데, 그냥 봤을 때는 단순 돌조각 2개에 지나지 않았지만, "단순히 돌멩이를 전시한 것이 아닌, 돌 위에 공간 그 자체를 느끼며, 하늘과 이어지는 듯한 물아일체의 순간을 맛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 작품을 기획" 하였다는 작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작품을 바라보고 실제 작품 (=돌)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니,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확연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현대미술을 감상할 때는 무조건, 작가를 공부하고 작가가 이 작품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그리고 작품을 통해 전달하려는 의미가 무엇인지 천천히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눈앞에 보이는 돌조각이 단순 돌멩이가 아님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리고 작품을 매개체로 작가와 대화하는 과정을 통해 무의식 속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상처까지 치유되는 나 자신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오시마의 상징 : 쿠사마 야요이 호박


나오시마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감상한 작품인 "시간의 복도 : Time Corridor" 

일본 설치미술 작가이자 사진작가이기도 한 스기모토 히로시(杉本博司)는 베네치아에 거주했을 때 배운 유리 공법을 활용하여 유리로 된 차실 (ガラスの茶室)인 본 작품을 만들었고, 베네치아와 베르사유 일본 교토를 거쳐, 나오시마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차실이라는 외부와는 단절된 비일상적인 공간에서 빛의 흐름과, 주변의 자연과,  느릿하게 지나는 시간의 흐름까지 온전히 체감할 수 있는 장소. 시간의 흐름이나 영속성, 영겁의 세월, 영원함, 그리고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그 무언가에 대해 고민하는 듯한 작가는 이 조형물을 통해서도 유리로 된 차실이라는 밀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의 흐름을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아쉬웠던 점은 (예상은 했지만) 작품인 차실 안에는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예전 기사들을 보면 차실 안에 들어가 그 공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세리머니 이벤트도 진행했던 것 같은데... 밖에서 조형물을 감상함과 동시에 저 밀실 안에서 바라보는 밖의 풍경은 어떠할지, 안에서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어떠할지 격렬히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https://www.premium-j.jp/portraits/20201003_12721/#page-3

(본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인터뷰가 담긴 웹페이지; 일본어)

스기모토 히로시 : 시간의 복도


베네세 미술관에서 가장 소름 돋았던 작품. 2D와 3D의 만남, 가상과 현실의 만남
베네세 미술관의 실외 작품 : 씨사이드 갤러리 일부
(왼) 베네세 미술관 실내 조형물 : 天秘、작품(돌조각) 위에 공간을 온 몸으로 느껴보자. (오) 개미의 농장 : 개미들과 함께 만든 작품. 그 과정도 예술이다.


2022년에 새로 개관한 Valley Gallery 베네세 미술관 전시티켓에 포함되어 있다. 점(Dot) 을 사랑하는 쿠사마야요이의 작품.


이우환 미술관에서 감상한 작품들도 빼먹지 않고 얘기하고 싶은데, 사실 지추미술관이나 베네세 미술관처럼 작품들이 화려하거나 압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형물을 매개체로 (내 나름대로) 작가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감상한 첫 시간이 된 것 같아, 개인적으로 뜻깊었던 전시였다.  (실내 사진 촬영이 불가했던 것은 아쉬웠지만 기억을 더듬어보면) 이우환 미술관 안에 전시된 작품들은 총 4-5가지로 테마(=전시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대부분 원형으로 된 조형물과 사각형으로 된 조형물의 서로 다른 배치와 구도를 통해 감상하는 이들에게 각각 다른 인스피레이션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작가의 의도 중 하나가 아닐까 싶었다.


가장 처음 마주한 테마는 조응의 방이었다. 조응이란 둘 이상의 사물이나 현상, 말과 글의 앞뒤 등이 서로 알맞게 어울리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사방으로 둘러싸인 철근 콘크리트의 중앙에 원형 조형물과 사각형의 조형물이 서로를 바라보고 놓여 있는 그러한 전시였다. 

두 번째 만남의 방에서는 총 7개의 조형물이 전시가 되어있고, 6개는 회화, 나머지 1개는 조형물이었다. 사실 이 방에서부터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천천히 시간을 갖고 생각해 보았는데, 점에서부터 선, 선에서부터 하나의 회화가 탄생이 되며 그 회화들을 이루고 있는 점과, 선과 면들을 원형의 조형물과 사각형의 조형물로 각각 표현한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것 (점, 선) 들의 만남들이 하나의 작품을 탄생시켰고, 작품명을 "대화"라고 표현한 것에 비추어 보았을 때 서로 다른 것들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을 표현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무엇이었든, 작품을 통해 내 안에서 드는 생각, 깨달음을 찾아보고자 적극적으로 감상해 보았고 그러한 행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세 번째 방은 침묵의 방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원형 조형물과 사각형 조형물이 주인공이었으나, 이전 테마와는 다르게 어둡고 깜깜한 공간 속에 대립하듯 배치된 것을 보며, 똑같은 조형물일지라도 어떤 공간에 어떤 구도로 놓여있는가에 따라 전달되는 인상이나 의미가 전혀 다를 수 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조형물 자체보단 그 조형물을 둘러쌓고 있는 공감각적 요소들 (빛, 조명, 공간, 색 등등)까지 작품으로 봐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우환 미술관 감상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주변에도 실내 전시에서 보았던 원형 조형물과 사각형 조형물이 곳곳에 서로 다른 구도와 배치로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 역시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는 것이겠지 생각하니 조형물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조금은 달라져 있었음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우환 미술관의 원형 조형물과 사각형 조형물의 다양한 구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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