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탑의 도깨비 - 11

박노인의 이야기

by 김수형

벽돌탑의 도깨비 - 11 <박노인의 이야기>


사또에게서 이야기를 하라는 명이 떨어지자 박노인은 땅 바닥에 엎드려있던 몸을 일으켜 등을 곧게 편 후 서서히 고개를 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50여 년 전의 일입죠. 7대 임금님께서 사육신등의 제사를 올리기 위해 강원도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라는 절에 갔을 때의 일이지요. 사또께서도 아시다시피 월정사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으로 유명하지요.”



박노인은 눈을 감고 기억 속에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때가 아마 이맘때였을 겁니다. 날씨는 무더운데 대왕께서 등에 피부병을 앓으셔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요. 대왕께서는 제사를 다 지내고 산을 내려가던 중 목욕하시기 좋은 냇물을 산속에서 발견했던 것이죠. 땀도 많이 흘렸지만 피부병으로 등이 가렵던 차에 대왕께서는 신하들을 멀리 보내고 혼자 냇물에 들어가 목욕을 하셨지요. 그 냇물이라는 것이 숲속 샘에서 솟아나 골짜기를 타고 꽐꽐 흘러내리던 물이라 얼음같이 차가웠습니다요. 그 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고 목욕을 하니 시원하기 그지없어 하셨습니다. 하지만 가려운 등을 씻을 수가 없어서 답답해하시던 그때, 대왕께서는 물가 숲길을 걸어가는 동자승을 발견하셨습니다. 휴~”


박노인은 짧게 숨을 내쉬고 다시 공기를 마시며 수염을 한번 쓸어내렸다. 숨을 가다듬고 침을 두세 번 삼키며 혀로 입가에 물기를 돌게 만든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갔다.


“동자승을 가까이 부른 대왕께서는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을 했습죠. 동자승이 피부병이 난 등을 씻어주자 너무나 시원해하셨답니다. 그런 후 대왕께서는 살짝 장난을 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 넌지시 동자승에게 혹시나 어디 가서 옥체를 만졌다는 이야기는 행여나 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그러자 동자승도 대왕의 등 뒤에서 혹시 대왕께서도 어디 가셔서 문수보살이 대왕의 등을 씻어줬다는 이야기는 하지 마시라고 하더랍니다. 대왕께서는 깜짝 놀라 등 뒤를 돌아보니 이미 동자승으로 변한 문수보살은 온데간데없었다고 합니다. 이 일로 대왕께서는 등의 피부병이 말끔히 나아 문수보살에게 고마움을 갚기 위하여 월정사를 더 크게 만들고 문수보살상을 만들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월정사 위쪽에 있는 상원사에도 선물을 보내십니다. 상원사에는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종을 찾아 보내도록 명하셨습니다.”


박노인은 오늘 손을 들어 몸을 왼쪽으로 틀면서 가느다랗고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종을 가리키며


“사또 저 종이 바로 그 종입니다.”



“음…….”


사또는 앉아있던 의자에서 몸을 앞으로 숙여 팔꿈치를 오른쪽 무릎위쪽에 놓고 손으로 수염을 가볍게 잡듯이 턱을 받치며 종을 쳐다보았다. 박노인이 이번에는 몸을 더 돌려 가늘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관아 남쪽에 있는 누각 위를 가리켰다.


“원래 저 종은 남루 위에 있던 것입니다.”


관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누각위로 향했다.


“저기 종이 있었다고? 음…….”


조금 큰 목소리가 이서방 뒤쪽에서 들려왔다. 순간 송나졸은 그 목소리를 낸 범인을 발견했다. 그 목소리의 범인은 바로 풍산아재였다. 송나졸은 발견과 동시에 오른손을 높이 들었습니다. 송나졸이 손을 높이 들자 풍산아재는 몸을 웅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송나졸은 조금 전에도 풍산아재의 머리를 두 대 때렸었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에 이번에는 손을 내려 손가락으로 조심하라는 뜻으로 풍산아재의 몸을 쿡 찔렀다. 그런데 그만 그 손가락이 풍산아재의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간지럼에 약한 풍산아재는 그만.


“큭, 큭, 풉……하하하하하하”


풍산아재는 웃음을 참으로고 노력을 했지만 큰소리를 내며 신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풍산아재의 웃음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들리자 사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군교가 사또의 얼굴을 보고 큰소리로 외쳤다.


“게 뭐하는 것이냐! 저놈의 입을 틀어막아라!”


군교가 명령을 내리자 송나졸은 천을 말아서 풍산아재의 입을 틀어막아 버렸다. 입을 막는 것을 확인한 군교는 사또를 향해 머리를 숙이며


“사또~ 송구스럽사옵니다.”


“됐네!”


사또는 군교에게 짧게 대답하였다. 그런데 좀 전에 풍산아재를 괴롭히던 모기 녀석이 이번에는 콧등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풍산아재는 조금 전까지 입으로 바람을 불어 모기를 쫓았지만 이제는 입이 막혔으니……. 풍산아재는 밧줄에 묶여있고 입은 막혀있으니 콧바람으로


“흥! 흥!”


거리며 모기를 쫓아보았지만 모기는 꼼짝도 하지 않고 콧등에 앉아서 풍산아재의 피를 빨기 시작했다. 잠시 후 풍산아재의 코는 빨간 딸기코가 되어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었다.



뒷이야기가 궁금한 사또는 박노인을 향해


“내가 이 고을에 부임해온지 얼마 되지 않아 그대의 이야기가 많이 이해를 돕는구려.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네. 그럼 계속해서 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게!”


라며 사또가 이야기를 재촉하자 박노인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한 50년 전의 일입니다. 제 자식 놈 혼례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그땐 소인도 한창 때였습니다. 나이가 서른 대여섯 때 일입니다. 소인의 아들놈이 열일곱인가 그랬으니까요. 그해 여름도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그전 해에 세조대왕께서 돌아가셨지만 살아계실 적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8대 임금이신 예종께서 한양에서 사람을 보내 종을 옮기게 하셨습니다. 한양에서 사람들이 내려와서 저 종을 가지고 간다는 것이 안동에 소문이 자자하게 나있었죠. 안동 사람들이 많이 서운해 하였답니다. 소인은 관아의 잡일을 하던 터라 그때 종을 옮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요. 남루에서 종을 내리는 일에 엄청나게 많은 밧줄을 사용했습니다. 그때 종을 내리다가 일꾼 몇이 다쳤던 기억이 납니다. 종을 내려서 특별히 만든 수레에 싣고 죽령을 향해서 출발했습니다. 몇날며칠을 갔습니다요. 가면서 밥도 해먹고 원래 안동에서 가면 영주에서 하루 자고 풍기에서 하루 자고 역마다 한 번씩 쉬면되는데 저 종이 무게가 무겁고 크다보니 종을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젊고 재미있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풍기에 도착해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이었습니다. 어제까지 힘은 들었지만 잘 움직이던 종이 갑자기 꿈쩍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반나절을 움직여보려고 갖은 수단을 다 써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운종도감1)은 할 수없이 한 상 차린 후 염불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을 염불을 외우며 불공을 드려도 별 변화가 없었습니다. 이미 종이 한나절동안 움직이지 않자 풍기고을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구경꾼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유교식 제사를 지내야한다는둥 용한 무당을 불러야한다는둥 의견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이것 저것하고 있는데 무당하나가 나타나 한상 차리고 굿을 시작 하더니 굿이 중반에 접어들자 그 무당놈이 갑자기 칼로 종의 이곳저곳을 내려치는 것입니다. 저희가 말리기도 전에 내려치던 칼에 종의 볼록하게 달려있던 유두가 떨어져나갔습니다. 운종도감을 비롯한 모든 사람이 깜짝 놀라 떨어져나간 조각을 황급히 줍고 우리들은 발과 주먹으로 무당을 두드려 패기 시작하는데 무당이 눈을 부릅뜨고 하는 말이 떨어져나간 조각을 안동 땅에 묻으면 움직일꺼라는 겁니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절 가리키며 안동을 다녀오라고 하여 풍기에서부터 안동까지 쉬지 않고 말을 달려 그 조각을 안동 땅에 묻고 돌아갔습니다. 어차피 떨어져나간 조각이니 안동 땅에 묻고 나서도 움직이지 않으면 그놈을 요절내도 늦지 않다고 생각을 한 것이죠. 하지만 책임자였던 운종도감은 얼굴색이 완전히 노랗게 변해서……. 큭큭큭, 제가 안동을 다녀 다시 풍기에 돌아가자 이미 무당놈은 도망간 후였습니다. 우리가 잡아 죽일 요량으로 사람을 풀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부터 종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나머지 길을 무사히 갈 수 있도록 산신에게 제를 지내고 죽령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별 탈 없이 오대산 상원사에 종을 전해주었습니다. 분명히 그때 그 종이 맞습니다.”


박노인이 고개를 살짝 들어 사또를 바라보았다.


“그럼 오대산에 있어야할 종이 여기 있다는 말이요?”


사또가 박노인에게 물음을 던지는 순간 다섯 명의 사내가 관가 대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사또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소만.”


다섯 사내 가운데 수염이 긴 사내가 다른 사람들과 달리 편하게 사또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 말씀하신대로 그 집에 도깨비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군교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떠난 후였습니다. 저기 저렇게 물건을 남기고 갔습니다. 저 종은 세조임금께서 오대산으로 보낸 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저 종이 왜 여기 있는지…….”


사또가 수염이 긴 사내를 향해 이야기를 하자 다섯 사내의 눈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흐흐흐, 안동에서도 도깨비를 잡아내겠군.”



1) 종을 옮기라는 명령과 함께 벼슬을 받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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